행 15:12-21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어떠한 역사를 하셨는지 말하고 예루살렘의 교회의 지도자이며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구약의 이사야서와 아모스서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중에 사람들을 불러 자신의 이름으로 불림을 받으리라하는 예언의 말씀을 언급하여 이렇게하여 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며 이방인들이 하나님에게 오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인들의 교류를 위해 세가지를 지키기를 권고한다: (1) 우상에게 제사지낼때 사용된 음식을 피한다 (2) 목졸려 죽여진 고기를 피한다 (3) 피가 아직 있는 음식을 피한다. 그리고 권고가 아닌 꼭 지켜야 할 도덕적 법: 음행에서 멀리한다.
예루살렘에서 모인 이것을 예루살렘 공의회라고 한다. 여기서 공식적으로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전해졌던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파되며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야고보. 그는 예수님의 이복형제였다. 이 당시 그가 예루살렘의 교회의 지도자 역활을 했고 그리고 역사가 요세프스에 의하면 율법을 꼼꼼이 지키는 유대 기독교인으로 알려졌었다. 이러한 야고보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일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 기독인들이 아직까지도 중요하게 여겼던 기본적인 음식에 대한 율법과 깨끗한 도덕적 삶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 당시 많은 이방인들은 헬라와 로마 문화와 종교에 배어있던 물란한 요소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요즈음 남색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커져 미국 문화와 교육에 번번히 나타나 교만한 행각을 보이는 것 처럼 그 당시에도 인간의 문화는 여전히 타락의 습성을 보이고 있었다. 미국의 문화만 그럴까… 한국 문화도 보면 과거 술집이나 어두운곳에서나 보였던 것들이 대중문화화 되어 만연히 보여지고 있는 추세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극치로 야비하고 추한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요한1서 2장에서 나온 것 같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께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이방인 기독교인들이다. 문화적으로 거리낀다 생각되고 어렵다라고 생각되면 너무 쉽게 구약은 폐지되었다라고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고 율법을 폐지시키신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셨다. 율법을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이 죄이고 어떤 것이 죄가 아닌 것을 알게 되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율법이다. 너무나 더러워져 무엇이 더러운것인지 모르게 하는 대중문화. 복음으로 거듭나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선택받았으면 토해내 버린 것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겠다. 주님, 주를 위해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