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수양회의 오류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직원 수양회를 매년마다 시작하게 되었다. 첫 두해 정도 참석하고는 수양회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조다단이 무슨 큰 변화에 대한 뉴스를 듣기위해서라도 참석해 달라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주제들은 특권, 문화적 겸손등 근본적으로 어용과 관용을 최고 가치관으로 두는 주제들.  어떻게 보면 서로들의 차이점이라는 것을 다 무너뜨리기위한 노력이다. 영락없이 사업분야에서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들과의 이해관계를 높이기 위해 오래동안 개발된 것들의 도입에 불과한 것들. 이런 가치관이 중요하다 생각되어 떠오르게 되는 것은 다들 소비자들의 정신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과반수의 준비하는 사람들이 여자들이며 소수민족이나 소수파의 억압이란 사상적 관점에서 세계관을 개발시키고 자신들의 사상을 팔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자연적 현상으로도 보겠지만 10억의 환자들을 위한 단체로 만들자는 목표을 주시하면 왜 이런 것들을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 알수 있다.  이런 단체는 실패하게 되있다. 큰 목적을 두고서 어떻게 목적을 이루자는 주제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의 다른점을 부각시키면서 벽을 낮추자는 이상한 방법과 주제를 가지고 와서 서로 편안 한 공간을 만들자는데에 핵심적인 목적이있다. 혼자이면서도 편하지 못한 것이 인간이다. 더불어 같이 공유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것이다.  불편함을 기본으로 삼고 목적지향적인 사고로 앞으로 가는 것이 이 세상 모든 단체들의 기본적 성공비법이다. 그런데 지금 무슨 단체 문화 상의자를 도입해 이상한 짓거리만 한것이 4년째.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은 서로 서로 다른 점들을 다 평등화 시켜 다들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다른 점속에서 흘러나오는 강점들이 서로 서로 융합해 모여 앞으로 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되어 나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봤을때는 자신이 중심적으로 강하게 가지고 있는 어떤 절대적인 믿음같은 곳에서 부터 힘든 것들을 극복하는 힘을 얻어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안에서의 자신의 현실 파악이며 절대적 믿음이며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남의 감정이 상할까봐 말을 못하게 만드는 단체문화를 만들어 개개인의 강점이 숨겨져가게 되있다. 서로 맞지않아도 언성이 높아지고 모임이 험악한 분위기라도 할말을 하며 개개인의 강점이 나와서 그것이 용납되고 감정과 무관하게 융합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데 지금 조성되는 분위기는 그냥 다들 서로 서로 조심해 주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런 병신같은 분위기에서 무슨 큰일을 이룰 수 있는 단체가 되겠는가?  그냥 이력서만 위대해 보이는 거짓 전문가들이 들어와 전에 기민히 만들어졌던 팀들을 다 붕괴시키고 자신들의 업적세우기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 거짓이 난무하고 있고 큰 돈을 준다고 하면 간도 빼주고 있는 상태이다. 4년째 계속 이런 골빠진 소리들만 늘어내면서 높은 자리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그냥 지내들 하고 싶은대로 모든 결정을 하고 있다. 그들에겐 어떤 근본이 되는 도덕적 이해란 빨리 붕괴될 수록 좋고 그럴수록 바른 말하는 사람들이 없고 세뇌교육을 통해 다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질문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조성한다. 그 전 10년의 발전에 비해 4년째 계속되는 지금의 변화는 무슨 실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있는 몇몇 교부금 작가들의 작업으로 들어오는 수입으로 회사가 돌아가고 있다. 어떤 실적과 전혀 무관한 등치만 큰 마케팅 회사로 변해있다. 큰 돈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일어나는 현상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원하는 단체 문화가 이런 것이겠다 싶다.  자신들의 무능력에 입닥쳐줄 수 있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으면 자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되고 중요한 결정과는 무관한 “단체 문화적 만들기”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미치광이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만 서로 의논하게 하면서 단체는 추진력을 잃어가며 이상짓만 하게 해서 낭비와 낭비의 고리를 만들어 나간다.  병든 기업화 만들기의 제일 큰 힘을 쓰고 있다. 지금부터 5년 안으로 자체적으로 맥이 빠져 붕괴 단계로 가 있을것이다.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이제 출구전략을 세워나가기 시작해야 겠다.

坑道 (갱도)

“북한이 폐쇄를 약속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들에서 전선 철거를 시작했다고 미국 CBS 방송이 보도했습니다”  – YTN – (2018年 5月 3日)

갱도 (坑道) 坑 구덩이 , 산등성이 강, 구들 항  道 길

① 땅 속에 뚫어 놓은 길

② 광산(鑛山)이나 탄광(炭鑛)의 갱 안에 뚫어 놓은 길. 사람들이 오가고 광석(鑛石)을 나르며 통풍(通風)ㆍ광석(鑛石) 조사(調査) 등(等)을 하는데에 이용(利用)됨. 수평갱ㆍ사갱(斜坑)ㆍ수직갱 따위가 있음

고려인 3세의 고백: 한국은 고향같아요

“Когда я приезжаю в Корею, я чувствую, что вернулся домой.” (한국을 방문하면 고향에 온 것 같아요.)

사할린 (Сахалин, Sakhalin) 한인 동포 3세.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러시아인으로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에 가면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한다.  집에서 먹는 것도 한국인과 같이 밥과 간단한 반찬으로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할린 고려인 3세.

나는 미국이란 타국에서 수십년동안 한인 2세들을 대하면서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한인 후세들을 위해 내가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마음 중심에 깊은 우물과 같이 자리 잡아버렸다. 물방울 하나 하나 뚝뚝 떨어지듯이 진행되고 있는 일이지만 남은 여생 끝나기 전에 완성할려면 더 박차를 가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臣僕 (신복)

“새로운 경영자도 대한항공 조 회장의 신복으로 밝혀졌습니다.”  – KBS News 9, (2018년 4월 24일)

신복 (臣僕) 신하 , 종
[명사] [같은 말] 신하 (臣下) (임금을 섬기어 벼슬하는 사람).

尹東柱의 序詩 (原文)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尹東柱

桐千年老恒藏曲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천년을 묵어도 자기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치않으며
버드나무 가지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申欽의 <野言> 中

安時: 2018年 3月 16日 (金)

행 21:17-36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야고보와 다른 교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바울이 유대인의 법률을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소문을 알려주고 모세의 법률의 나온 나실인 서약을 권한다. 바울을 이를 따라 행하여 유대인으로서 지킬 것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는 것으로 공개적으로 보여준다. 바울이 서약을 지키기위해 성전에 있는 동안 유대인들이 바울인것을 알아보고 에베소에서 대리고 온 일행중의 헬라인도 성전에 있는 줄 알고 다른 모든 유대인들도 선동시켜 바울을 잡아 끌어내어 때려 죽일려고 하자 이 소식이 지역구 행정 담당인에게 전해져 군인들을 대리고 바울을 잡아올려 했으나 군중들의 폭력으로 인해 담당인은 군인들로 인해 보호 받으며 돌아가고 군중들은 계속 바울을 쫓아내라고 소리질렀다.

바울은 율법을 버리라고 가르친 적이 없고 율법아래에 있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율법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이방인이 유대교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할레를 받고 율법을 지키고 제사장에게 알리어 예식을 거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다 간과해 보이는 바울의 가르침은 회장이 없어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반영한 것이었다. 즉 예수를 통해 율법을 통해 하나님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직접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율법의 전통과 무게가 어떤 것인지 바울은 잘 알고 있고 전에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도 존중해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바울은 30일동안 이루어지는 나실린 서약을 이행한다. 그러나 이행 중에도 유대인들은 군중을 선동시켜 폭력을 행사하여 바울이 다시 로마 행정관에게 잡혀 들어간다. 비록 수백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했지만 아직 까지도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잡아 죽였던 때 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반대하고 있는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아직까지도 유대인들의 전통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 이 처럼 사람의 버릇이나 오랫동안 행해 온것이 바뀌는 것이란 쉽지 않는 것이다. 주님, 나의 오래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주의 뜻하시는 길로 인도하실 때 순종하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安時: 2018年 3月 14日 (水)

행 21:1-16

바울의 일행은 동쪽으로 가며 몇몇 도시에서 제자들의 집에 머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다리거나 움직인다. 이때에 예언하는 자들과 선지자들이 있었으니 유대에서부터 선지자 아가보가 와서 말하기를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묶여 이방인들에게 넘길 것이라 하고 예언을 한다. 주위 형제들이 바울에게 울며 가지 말라고 하나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죽을 각오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니 울지 말라고 한다.

예수님또한 자신의 사명을 위해 십자가 위에 죽음을 이야기했을때 사도들은 그리 안된다며 말리거나 슬퍼했었다. 바울의 삶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원동력이 되어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며 길을 나선다. 묶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기꺼이 죽기까지 하노라 하며 자신의 사명을 선언한다. 사실 태어나서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바울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분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자신이 어떠한 용서를 받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다면 자기의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았던 사명자였다. 하나님의 주신 하나의 용서에 그 분의 은혜에 모든 것을 다 던진 바울. 우리는 냉냉하고 썩어 없어질 여러가지의 세상것들에 매어 냉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 요한계시록 3:15-16

安時: 2018年 3月 8日 (木)

행 18:24-19:7

알렉산드리아에서 에베소에 온 아볼로는 언변에 능하고 성경에 능하였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예수의 도를 담대히 가르쳤지만 오로지 요한을 통해서 만 알고 있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예수에 대해 저 자세히 알려주고 아가야로 갈때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사도들이 그를 환영하며 받아 줄수 있게 편지를 써주었다. 그가 도착하여 능력있게 말씀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선포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공개적으로 물리쳤다. 바울이 에베소에 왔을때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 만 알고 있었던 제자들이 있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믿었을때 성령을 받았냐고 묻자 그들은 들은 적도 없다고 하여 안수하여 기도하니 성령이 임하고 그들은 방언하며 예언하기 시작했다. 약 12명 정도되는 제자들이었다.

아볼로와 에베소에 있던 제자들은 요한을 통해서 예수를 알게된 제자들이다. 그들은 요한이 가르쳤던 것 처럼 예수가 구약의 언약을 성취시키는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삶이나 죽음 그리고 부활과 오순절에 일어났던 일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다.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라하며 광야에서 외쳤던 소리로 부르심을 받았던 요한. “회계하라. 예수 메시야의 시대가 지금 임하였다.” 그의 제자들을 통해 볼 수 있듯이 그들은 회계를 통해 예수의 완전한 계시를 받아 드릴 수 있는 준비가 완벽히 되었었다. 아볼로는 인간 학문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왔던 유대인이었다. 그는 이미 구약의 말씀에 능통하여 예수를 전하고 있었으며 이미 1년 반정도 고린도에 있으며 가르쳤던 바울의 사역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보면은 하나님은 어떤 유창한 것으로 자신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물방이 모여 강을 이르듯 작은 것들을 통해 사람들을 준비시켜 사용하시는 것을 본다. 세례요한의 메시지,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전함에 응하는 아볼로의 겸허함.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고 바울의 메시지를 받아드리는 요한의 제자들. 파가르기 좋아하고 어떤 권력체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온전히 예수가 중심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만을 받고 순종하는 사도들이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주의 제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아볼로와 같이 주께서 주신 맑은 정신과 재능은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아직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겸허한 마음으로 주의 인도하심을 구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