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Kendo (剣道)

剣道の真相

剣道は、刀剣を使用して自己の身を護り、相手を斃すことを修練し、それに熟達すれば、剣道の目的を達成したものと言えるであろうか。刀剣は、その故をもって製作せられ、剣道はその故をもって修練せられたので、その起源は、正しくそれに違いないが、二千年前、肇国の当時から日本にあったと認定されるわが国の刀剣、並びに剣道は、年を経るとともに精錬され、ただに攻防の用に供するに止まらず、智、情、意備わり、卓越した美、気品、わび、さび等の道を含有する、即ち高邁な人格を具現するものとなった。古来刀剣を鑑定するには、剛健にして、折れず曲がらず、鋭利よく鋼鉄を切るだけでは、名刀とはされない。ここに自ら備わる気品が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が名刀の姿であり、名刀として賞味される所以である。村正の刀には殺気が漲り、正宗の刀には、靄然たるものがあると言われておる。村正の正宗に及ばないところは、この点にあるであろう。人間でも圭角が外に表れるようなものは、決して真に強いものではない。強いものの程、温情溢るる徳を備え、柔和で何人にも常に親しみ易い感じを与える。刀剣の本来の性能が、人を切るにあって、その実、これを鍛える人、又使用する人の修養の結果、かえって、人を生かす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までに発達している。すべての芸術品の中、特に優れたものは、いずれも皆道に入っている。ここまで到達していないものは、技巧的に如何に秀でたものでも、賞翫の価値が少ない。絵画はえがこうとするものの、実体を、よく画き表し、又は目を悦ばせるものであればよいとして、無味乾燥で、作品に作者の人格の反映がなく、心を打つ何物もないものであったら、間のなく飽き、次第に厭味が生じて、遂には見るに堪えないものとなる。それは、この絵には、真に人を感動せしむるに足る大切なものが失われているからで、結局、この絵画は道に入っておらないのである。

剣道も同様、はじめは、刀剣をもって身を護り、相手を斃す術を専ら修練したのが、長い間の修練の結果、術は既に道に入り、刀剣による攻防の技術を蝉脱して、人間の道に到達した。敵を攻めるよりも、先ず自己を守ることを工夫され、他をそしるよりも、内省を尊ばれ、相手と争うよりも、和することを念願するようになった。しかも決して攻防の術を蔑ろにするというのではなく、真に攻防の理を成就せしめるには、天地自然の道理、人道によらなければならない。古来の剣道各流の伝書を閲するに、その奥義を述べるに「和に従うをもって本とす」とか、「忠孝仁義の誠に発す」とか、「心法を専らにするにあり」と言って、少しも自然の道、人道に逆らって、和平を乱し、殺伐を意味するようなものはない。

なお、剣道の学び方に於いて、古人は、刀剣、木刀竹刀の握り方、足の踏み方、姿勢、目の付け方、間合、心の用い方等、総て詳細に亘って示されておるが、一つとして、天地自然の理法に従わないものがない。これをただ道場で練習する時ばかりでなく、日常の生活、万般の行為に具現して修養練磨することによって、高潔な人格を養成することに専念した。人格が向上するに従って、その人の剣道は、技術の進歩に止まらず、正しく高雅なものとなる。

更に剣道の本質とするところは、その体は、人格の完成にあって、一面には、春風駘蕩の温情を含み、一面には、秋霜烈日の森厳を存する。又剣理に通じ、感応自在、堅忍持久、心身の豁達なる働きを体得する。その用とするところは、身をもって範を垂れ、社会の浄化、善導に努め、人類の福祉を増進するにある。然るに剣道の本質を取り違え、又はこれを閑却して修養を怠り、打突の修練、技の巧者をもって事足れりとするに於いては、たとい強剛、巧緻の剣道を修め得たとしても、社会、人類の進歩に貢献する何物もなく、特に暴戻、不遜の行為あるに至っては、自己を破滅せしめるばかりでなく、社会の安寧秩序を乱し、道徳を蹂躙する。

剣道範士九段 佐藤忠三著

今日、12/25は 佐藤忠三 誕生日。(~1956・明治31年)【範士九段、直心影流、武専教授】「私の一生は、素振りの生涯であった」

Day 2 – Jeffrey Marsten sensei kendo training @ UAZ Rec Center

On enzan no metsuke

Read your opponent from head to toe; know when he/she is coming in

On when to strike

before the strike, after the strike, and when mind stops

wazas

45 degree downward strike from above; in reverse, by starting to point at the right side of tare

slide on omote side of the shina over the top of the aite’s shinai, to the tsuba location and then men (nori – ?)

Marsten sensei’s favorite waza is the men hiki kote

Nihon kendo kata – kaeshi men

debana kote

Misc

perfect practice makes perfect

Day 1 – Jeffrey Marsten sensei kendo training @ Tucson Kendo Kai

Nihon kendo kata

Marsten sensei was directly and meticulously taught under Inoue Yoshihiko sensei in Japan on kendo kata. This is why he’s 7th dan and not stuck at yondan like so many in the US. On all of the katas, there has to be an in-depth understanding of each of the katas. It forms the basis of kendo. For ippon-me, there is the righteousness represented in jodan. And the split opening of the body in half has to be felt by the uchidachi. The pressure has to be real. In godansha kendo, every cut is made within the context of in-depth understanding. Without this, it’s a mere stick fighting. Sanbon-me is a mercy. It’s not mere mastery of technicality — there has to follow a real understanding. The pressure has to be real, not a mere routine. The shidachi has to feel as if he’s won in a fight; uchidachi has to feel as if he’s lost in a fight if it’s a kata that ends with a kill.

On shomen

When doing yakusoku geiko with Marsten sensei, he pointed out good shomen. It’s also the one I felt as such. It’s little hard to explain, but it’s a combination of tenouchi, ki, ken, tai that somehow comes out really good.

On kote-men

We usually practice wazas in steps as if for beginners, but in wazas, the last strike is what is really counted. In kote-men, the kiai kote-men are three syllables, but we take two steps; so the kiai can be shortened to te-men. And also, the waza is meant to be executed as one compounded motion.

On why we do kendo

We don’t get promoted as often around here, and we don’t even have taikai — but they all help us to know where we stand. The ranks are just for pecking order in dojo, and doesn’t mean much more. Each federation has “good boys” club where certain people get ranks because they belong to certain federations, and they had paid the dues there. This probably explains for that unexplainable failed shinsa where the other guy who completely screwed up passed while I did not.

On nihon-me

Cut with a power just enough to slice through the wrist and leave the hand dangling.

On what we call “warm-up”

It’s a kihon drill, not a warm-up. Perfect practice leads to perfection. When doing suburi, don’t break it into two motions of lift – strike, but make it into one where the footwork feels like one move on a strike for both going forward and backward.

On “dead sword”

Lifting up the sword too much — it’s merely adding the distance + time.

On DELIBERATE TARGETED PRACTICE

Have a written plan. Solve one problem at a time.

On seme

You mentally cut the person, and then the sword follows.

On fumikomi

No need to take a bigger step, the longer step you take, the more time you’re taking.

에프킬라 맞은 모기처럼

에프킬라 때려 맞은 모기처럼 비실 비실거리며 기운빠지는 모습이 조금은 측은했다. 캐이는 일그러진 아픈 표정으로 마지막 대련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을 표시를 나에게 했고 제르미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어 마지막 한시간 동안 통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군대 생활 수십년의 경험이 있는 비게이 사범과 페리는 뚝심있게 버티고 있었고 나는 갑자기 나타난 봄 꽃가루 알르레기 증상이 나지막하게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숨이 차 헐떡 거리다가 끝 례에서 6초 간격으로 연달아 몇십번의 멈추지 않는 재채기를 유발하는 실례를 범했다. 그리 몸에 무리가 되게 하던 연무도 아니었는데 왜 다들 보통 때보다 유난히 더 맥빠지는 모습이었을까?

로스앤젤레스 중앙검도도장에서 40년 검도를 가르치신 시카이 마사시 사범이 방문하는 연무가 오늘 시작했다. 내가 10여년전 검도를 시작하고 나서 뉴멕시코에 3번째 방문하셔서 특별 연무를 통해 가르쳐 주시는 유일한 고단자 7단 검도 사범이다. 2006년 대만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검도대회에서 미국 검도팀의 코치로 역사상 딱 한번 일본검도팀을 이겨 미국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당사자이기도하다. 엘에이에 음식업계에서 종사하고 계셔서 한국친구들도 많아 기본적인 한국어와 한국 검도 용어에도 능숙하신 분이라 친근감이 더 가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전에 북쪽 타오스에서 특별 연무하고 나서 어느 검사(劍士)의 집에서 저녁을 같이 하며 젊었을때의 눈부신 활약을 들으며 부러워 했던적도 있었다. 이런 미국 검도세계의 大家가 이런 보잘 것 없이 작은 곳에 와 주시는 것은 사실 감사한 것이다. 10여년 연무하면서 이렇게 와서 가르쳐 주는 사범이 없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마흔의 젊은이처럼 바닥을 누비며 대련하는 것을 보면서 끝에서가서 숨을 헐떡대는 자신을 보며 부끄러워지기까지한다.

타오스는 여기보다 더 높은 산맥같은 곳. 거기서 3명 정도가 왔는데 전부터 안면이 있는 딕슨 사범하고 지금은 나보다 한참 고단자가 되어 버렸지만 (미혼에다가 여유가 많음) 친구같이 지내온 20대의 아론과 그리고 새로 보는 폴이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신참이 오셨다. 여기보다 더 고지라 폐활량이 더 많은 것은 알겠지만 아론 같은 경우는 실력이 검사가 많은 콜로라도의 대회에 참여해 일 이등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있는 검사다. 맨 처음 아론을 만나 대련을 했었을때 기억이 생생하다. 잠깐 눈 깜빡하는 사이에 훅 들어와 머리를 치고 이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물론 20대와 40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러나 보통 여기 4~5명 정도의 사람들과 매주 마다 하는 연무의 속도보다 매우 빠른 속도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 어떤 억울함 같은 것 까지 느끼게 된다. “내가 여태 무엇을 한것인가?” 가르치시는 사범님도 나이가 지극하고 그 다음 윗 선배도 관절 여기저기가 다 맛이 가고 있는 고령이 되어가는 상황에 고도의 연무를 기대하기는 힘든 현실. 여기 지역에서는 그 다음 등급에는 내가 있고 다음은 다들 초보자들이다. 외부에서 오는 이들과 대련하는 것은 쓰라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다시 맛보는 것 뿐이다.

물론 대단한 인물이 오는 것에 대해 불안감 같은 것 때문에 심신이 편하지 않아 구토 현상도 보이고 몸이 보통때 처럼 말을 안들을수 있다. 그래서, 캐이나 제르미가 보였던 증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저질 체력도 바닥을 이렇게 빨리 들어내 보이는 것은 불쾌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 사람들 앞에서는 무덤덤해 보인다. 속은 사실 조금은 뒤집혀진다. 가까운 친구라도 옆에 있으면 나의 어린 시절에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다시 상기시켜주며 잠깐 자기 연민에 다시 빠져있기라고 했으련만… 가까운 친구도 너무 멀리있다. 더군다나 자기 연민 같은 사치는 이제 즐길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오늘 이렇게 맥없는 모습이 나타났을 것을 미리 알았다면 몇 주전부터 고도의 훈련이라도 더해 준비를 할껄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한 때 매일 한시간씩 수영을 할때는 이보다는 났었는데… 매일 아침마다 뛰었을때는 이보다는 났었는데… 아무리 길게 했어도 단지 몇주만 하지 않으면 금방 초라하게 되는 이 놈의 허약 체질. 항상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바닥이 너무 빨리 드러나는 이 허약 체질. 몸도 이런데 우리의 영은 얼마나 더 바닥을 빨리 드러낼까?

그나마 매주 일주일에 두번 연무를 해서 간신히 고단자와 버티면서라도 대련을 할 정도의 실력이 되어 있다. 사실 일주일에 세번 연무가 기본인데 여기는 장소를 구하기 힘들어 사정상 두번만 만나 연무를 하고 있다. 보통 연무는 2시간. 일주일에 총 4시간. 아침에 큐티는 30분. 일주일에 총 3시간도 못된다. 가족과 성경읽기 20분. 일주일에 2시간 반. 큐티와 성경읽기를 합치면 많아야 6시간 정도이다. 대략 보통 타지에서 사회인 검도인이 기본 연무하는 시간이랑 비슷하다. 시간적 양의 투자로 따지기는 적절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검사들이 연무에 투자하는 시간에 빗대면 대략 어떤 실력의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을 대략 감할 수 있다. 마태복음 25:10b,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잔치에 들어간 자들과 들어가지 못한 자들의 차이는 단지 정신적과 물질적 준비의 차이였다. 에베소서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때가 악하기 때문에 허송 세월을 지내기가 더 쉬워졌다. 정신차리라는 소리이다. 깨어있으라는 말씀이다. 디모데전서 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검도같은 운동은 심신을 단련하는데 유익이 있으나 할때 잠깐일뿐 말씀의 순종은 모든 것과 관련되어 유익하니 현제와 미래 모두의 해당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은혜를 누릴수 있는 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핍박, 즉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핍박같은 것이 다시 우리에게 닺쳐오면 과연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목숨을 바쳐 예수님을 시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언인 필사즉생행생즉사(必死則生幸生則死)는 사실 무사의 기본적인 태도을 반영한 것이다. 검도에서도 사신(捨身)이란 단어가 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던지듯 공격해야 한다는 뜻으로 고단자들이 숙지해야 하는 기본적인 정신적 태도와 기술을 말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연무를 해도 바른 정신으로 하지 않으면 오는 공격에 방어 자세만 취하든지 점수 얻기 쉬운 공격기술에 의존하게 된다. 진정한 一本은 捨身精神이 모든 면에서 깃들여져 있는것이다. 즉 최고의 기술은 제일 단순하면서도 기본 정신을 제일 잘 나타내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최고를 반영해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道에 어울리게 사람들과의 기본적인 信도 두텁게 하며 세상 꾸정물 한 숫가락 더 퍼먹을려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목숨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당신은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핍박도 아닌 작은 바람이라도 불때 에프킬라 맞은 모기처럼 비실 비실 거리며 죽어갈 것인가? 연무하라. 지금부터. 매일같이.

평정심을 잃은 모습은 꼴보기 싫은 모습

지금은 새벽 2시.  한국에서 제17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가 이제 막 끝났다.  내일이 주일이기는 하지만 실시간으로 시청하기 위해 일부러 오후때 늦잠도 잤었다.  마지막으로 남자 단체전이 있었다. 매 대회마다 똑같이 일본, 한국, 미국, 대만 순으로 끝났다.  매 대회와 똑같이 한국은 일본을 이기겠노라하는 기세로 시합에 임했지만 매 대회와 똑같이 한국은 다시 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마지막 한국 단체전의 경기 모습은 참으로 낯뜨거운 작면이 연출되었다. 세계가 보는 앞에서 한국 선수는 계속해서 드러눕고 한번도 아닌 세번씩이나 이런 저런 문제를 삼으며 나가서 시간벌이를 하고 머리수건까지 다시 매는 작면에 끝에 몇 초 안남은 시간 중 발에 태입을 다시 하겠다고 나가고… 2대 1로 지고 있었으나 마지막에 혹이라도 이길 수 있는 틈이 있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구차한 행보였다. 다들 경악을 하는 건 물론이다. 그러면서 나름 한국팀이니까 누워서 침뱃기하지 않기위해 한국인으로서 그냥 무조건적으로 상대의 잘못만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더 높은 기준이 있는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치사하게 나와도 존심을 지키며 야비하거나 구차한 방법을 택하지 않는 모습.  누구든 다 원하는 모습이며 스스로에게도 원하는 모습이겠지만 혈투극의 극치에 도달할때는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일까?  한국은 이길 수 있다란 가능성에 모든 것을 바치듯보였다. 벌써 실력으로 판가름이 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운좋게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길려고 하는 모습. 평정심을 잃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 매우 추한 모습일 수 밖에 없다. 승리란 우상앞에 절하는 선수들. 물론 올림픽에서는 이기는 자에게만 월계관이 주어지지만 이런 시합에서는 이기면 그냥 타인에게 우쭐할 수 있는 권리같은 것이 주어지는 것 뿐.  검도의 목적이라도 들먹이는 것과는 상관 없는 것이다. 인격향상. 아무리 칼이 오고가는 중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인격을 단련시키는 무도. 씁씁할 마음이다.  나 자신도 이기지 못하는데 어찌 남을 이길 수 있겠는가?  인간이라 어쩌겠는가. 하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고 최고를 상징하는 선수들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은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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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心

하심 (下心) – 수도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

수도자가 그 경지가 높거나,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 하여 권위를 세우려고 하면,
권위주의가 되고,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불일치를 부른다.

그래서는 도법을 전하기가 어렵다.

권위는 남이 세워주어야 한다.
상대방이 나이가 많을 때 에는, 연배에 맞는 대접을 해주고,
상대방이 어릴 땐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한다.
곧,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배려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도(道)를 공부하는 사람의 기본이다.
상대방의 나이와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또한 수도인의 기본이다.

도(道)나 석문호흡법에 있어서는 근엄하고 신념있게 해도 되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은 상대의 연륜과 인격을 인정해야 한다.
나도 나이가 비슷하면 평소엔 친구처럼 지내고,
도장을 이끌어 가거나, 가르칠 때 만 스승처럼 한다.

도(道)를 가르칠 때만 스승이었다.

회원들에게 석문호흡을 가르칠 때만 스승처럼 하고,
평소에는 마음 속에서도 예의 바르게 상대를 대하여야 한다.
평소에도 절대 권위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
권위는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세워주 는 것 이다.

공부를 가르칠 때는 양보가 없어서 수염난 할아버지처럼 가르칠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배우는 자세로 가르쳐 달라고 해야 한다.
배울 때는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상대방이 자기보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
모르는 걸 배울 때는 부끄러운 게 아니므로 망설일 이유가 없다.
수련경지가 낮아도 나이든 분은 존중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많이 아는 듯이 남위에 군림하려 하면 삐딱한 마음이 되어 공부하기 어렵다.

난 찻집에 가면 차 이야기를 하는데,
비록 내가 잘 알지만 차 이야기를 듣는다.
한마디 던져서 녹차 파는 집에서 들을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이야기 해주지만
엉터리 이야기면 분위기 망칠 필요 없이 이야기를 들어준다.

하심(下心) 은 수도인(修道人)에게 진정으로 필요하다.
사업하는 사람은 장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라도 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음에선 진심으로 안 되도 표면적으로는 하심을 한다.
이렇게 하면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자(修道者)는 걸리는 것이 없어서 굽힐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업 사는 사람보다 더 하심(下心)을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는 어필(appeal)하고 주관을 펼 수도 있지만,
수도자 생활을 올바로 하려면 하심(下心)해야 한다.

수도자(修道者)는 선도수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나머지 분야는 설사 내가 많이 알아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 이 좋다.
나이를 무시하면 예의 없는 도인이 된다.

내가 합기도 사범생활을 할 때,
선배가 2 단 옆차기를 가르쳐주면 할 줄 알아도 모르는 척 하고 선배보다 조금 못하게 했다.
그러면 선배 입장에선 소질 있는 후배로 본다.
이것은 삶의 방법론이고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 도반들과 대화해서 선도(仙道)에 대한 이해를 높여 놓는 것이 필요하다.
수도자들이 “이 수련은 혼자 하는 수련이야” 하면서 후배들을 방치하면 안 된다.
서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흥미를 돋우어 주고… 도의 깊이를 조금씩 알려주고…
“차 한잔 하시죠” 하고, 먼져 다가가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

스스로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러한 마음 바탕을 지니고 있으면,
마음속에 지니든, 행으로 옮기든, 분위기가 온화해진다.
수도자들, 즉 도반들 사이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된다.
수도하는 도반들은 친해지되 서로간에 (스스로가) 예의를 지켜야 한다.
주위 사람에게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권위, 지위 모두 버리고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 가르쳐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수련지도 잘 해주고, 도움 주고 도움 받고 하면서 재미나게 도장을 운영해야 한다.
권위는 자기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세워주는 것이다.
또한 작은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가령, 주변 사람이 음식을 살 때, 아주 고맙게 먹어야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점점 미묘한 분위기가 된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되어 대접 하는 사람은, 갈수록 대접하기가 싫어진다.
형체 없는 언어 – 고마운 마음이 습관화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큰 복이다.
작은 것을 잊지 않아야 큰 복을 받게 된다.

수심이 안되면 양신 단계에서 걸린다.
주위에 베풀어야 한다.
수도자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은 보시(普施)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경계하라. 간사해지지 않도록……
조그만 것에 감사해야지,
그 가치의 적고 많음을 보지말고,
똑같은 정성으로 생각해야 한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 에 감사해야 한다.
아주 사소하게 작은 것 일 지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감사의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출처] 하심 (下心) – 수도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 |작성자 하얀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