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양극화는 코로나 이전부터 시작한 것들이고 사태가 터진 후로는 그저 가속화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까지 경제를 살려놓았다는 말은 맞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부채를 실질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마이너스 경제였다란 것과 그냥 외부적으로 비추기 위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ying)의 연속이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단지 미국의 달러가 세계화된 화폐이어서 계속해서 경제의 모습이 띄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미국을 적대시 하는 북한에서 까지 미국의 달러가 기존화 되지 않았던가. 그 보이지 않는 위세만으로도 달러가 미국 경제를 계속 흘러가게 하는 것이지만 미국은 이미 실속 경제란 것은 희미하게만 지속되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는 또 어떠한가? 아무리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다 한들 여전히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같은 운동으로 시끄러워져 있고 비판적 사회정의 (critical social justice)의 깃발은 사회를 비합리적인 정치적 정당화(political correctness)운동으로 갈기 갈기 찢어놓고 있다. 경찰로 인해 죽는 흑인들의 숫자보다 직무중 죽고 있는 경찰의 숫자가 더 많고 흑인 동네에서 흑인들 서로가 죽이는 수가 훨씬 많지만 정치화된 이슈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슈가 되지 않는 것들을 극대화로 이슈로 만드는 썩은 대중 매체들의 정치 플레이에 바보들은 말려들어가고 있다.
이런 배경에 코로나로 세계가 앓고 있다. 세계경제포럼會는 바로 코앞에 大清零를 말하고 있고 잃을 것이 없는 그들은 전 세계가 다시 제구성되며 그들이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발정되어 있다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처럼 세계적 변화의 바람이 불때가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에 또 있었으며 그것을 다시 살펴 바르게 앞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19세기 西勢東漸의 문턱에 있던 조선역사에서 배울점은 온통 어리석은 지도자들의 실패를 통한 서러운 배움으로 가득차 있는 반면에 40년 정도 빠르게 18세기 중턱에서 일본이란 나라는 대변화의 가능성을 맞이하는 국면에 있어서 상당히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 처럼 보인다. 현대어에서 을씨년스럽다란 말이 사전에 들어갈 만큼 조선은 나라를 빼앗기는 서러움을 경험했지만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복의 꿈을 꾸며 이를 단기적으로 실행까지 할 수 있었던 힘을 키운 나라는 일본이란 나라였다. 일찍히 변화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일본에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란 거인이 있었다. 그는 비록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지만 그의 업적은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현제 재일 한국인 3세이며 세계32위 日재벌인 Softbank의 창업자인 손정의(孫正義)또한 자신의 회사의 로고를 사카모토 료마의 기업 Kaientai (海援隊) 로고를 그대로 가져와 일본인인 료마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서양국가들을 공부하여 일본의 전통적인 계급주의에 막을 내리고 일본 국회의 성립을 가능케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가 더 일찍이 하였던 것들이 더 큰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무라이 가문이지만 下士의 집안으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반쪽양반 가문의 막내아들이었다. 일본은 사회신분제도가 한국보다 더 엄격히 그리고 더 무섭게 지켜졌었다. 과거 조선에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양반 가문 출신이면 양반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반쪽 양반이면서 사회성만 좋고 사람들이 인정해 주면 양반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무리 사무라이(侍) 가문이라 하고 검술이 좋고 학문이 깊어도 下士집안 출신이면 上士집안 출신에게는 개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사회적 열등감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부터 료마(龍馬)는 귀중한 배움을 받는다. 첫 배움은 격노로 그 어떤 의미 있는 것도 이룰 수 없다란 것이고 두 번째로는 어린 자신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어머니에게서 생명의 귀함을 배운다. 그 두가지의 배움이 그의 삶의 중심적인 역활을 해냈던 것 같다. 이때 중국의 아편전쟁의 대한 결과를 얼마전에 듣던 일본인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함대사령관 페리의 방문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고 방문 이후에 일본은 매우 시끄러워졌다. 료마가 살고 있던 토사번 또한 같았다. 료마와 같이 성장한 친구들은 다 성인이 되고 차츰 다들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갈 당시 미국 페리의 방문으로 인해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이 고조 되가고 있었다. 존왕양이 정신의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下士들과 더 현실적으로 사태를 바라보았던 막부(幕府)와 막부를 지지하는 上士는 작은 불씨에도 활활 타올라 서로 목에 칼을 댈 수 있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지만 료마는 양쪽을 화해시킨다. 거듭 그는 상반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역활을 멋있게 해낸다. 사실 화해나 이해를 시켜 가까운 친구나 지인의 생명을 구한 것도 두번이나 된다. 侍의 특유의 야비한 책임전이로 자신의 하급인사에게 할복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료마는 생명을 자신의 생명을 던지면서까지 구하는 일본식으로는 바보 같은 짓을 여러번 한다. 그러나, 위신앞에서는 생명을 파리같이 여기는 사무라이 중에서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뼈 깊이 믿는 료마는 가까운 친구들에게까지도 이상한 외계인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만약 존왕양이 정신만을 가졌던 일본이었다면 활활 타오르면서 일본은 순식간 불타버리고 미국에게 먹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동력을 더 건설적인 흐름으로 가게 한 것이 료마의 더 큰 공인 것이다.
지금의 한국을 보면 정치적으로 다시 양극화된 시대에 들어간 것 같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중간정도 되는 나라에 속하지만 대국들 사이에서는 사실 한국은 보잘것 없는 나라다. 한국 뉴스를 대하면 마치 세계가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 미국 전략 리포트나 외국의 관점에서는 한국은 15~20 번째의 관심에 드는 위치에 있다. 즉 외국의 시각으로는 다 중국을 촛점이 가있고 한국은 그냥 부차적인 관심에 놓여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대한민국은 얼마든지 북한과 같이 없어질 수 있는 상황에 금방 놓일 수 가 있는 것이다. 오늘 평양에 핵무기가 떨어지면 서울은 불가피하게 후유증을 같이 겪게 된다. 한국에서 미군이 다 빠져나와도 미군의 관점에서는 오키나와 기지가 있기 때문에 동북아시아의 전략에 그리 큰 차질이 없다. 한국이 미국이 필요한 것이지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한 적이 없다. 마치 18세기의 중국, 일본과 같이 서양 나라 들에게는 별볼일 없는 나라였다면 지금의 한국은 그 때보다 더 빈약한 나라이다. 그런데 그 때는 조선이란 땅 덩어리가 하나였는데 지금은 분단 국가다. 그리고 분단 국가인데다가 그 속을 드려다보면 조선 말기처럼 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파 저파로 다 나누어져 있다. 국력이 바닥난 상태란 것이다. 딱 잡아 먹히기 좋은 상태란 말이다. 坂本龍馬같이 화해와 다리 역활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더 없이 필요한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