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1:1-18
유대땅의 유대 기독교인들이 이방인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유대 기독교인들은 베드로를 비난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상종하거나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가이사라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말하며 이방인도 성령님, 즉 하나님의 영을 선물로 받는데 내가 누구라고 하나님의 일을 막겠는냐 하며 설명하니 그때야 다른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이제 이방인도 회계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인정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선민사상(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란 정신)이 그 때나 지금이나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아담과의 언약 (창 3:15) 에서도 아브라함과의 언약 (창 12)에서도 암시된 모든 인류의 구원에 대한 뚜렸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 사이에서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당연한 것을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듣고 나서야 인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 마져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칭 잘 안다고 했던 바르세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무지하다고 말한 것이다. 진리란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의 단순함을 지루해한다. 그래서 이생의 자랑, 육신과 안목의 정욕으로 인해 더 흥미스럽고 자신의 물욕을 채우는 것을 추구한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없는 높은 벽같은 것을 자신들이 만들어 뽐내고 다니는 것을 즐거워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고 그 들의 누룩같은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 즉 말씀 만을 가지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지않았다. 사소한 율법의 조항들을 가지고 따지며 자신들의 머리좋은 것을 밝히고 남들이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즐기던 자기 도취증에 빠졌던 사람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말고도 더 자신들의 삶을 재미있게 하는 것을 우상삼아 사는 사람들이 만연하다. 그래서, 마음이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진리 앞에서 하품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만 찾아간다. 진리는 삶의 뒷자리도 아니고 등에 칼을 맞고 피흘리며 트렁크에 들어가 있어 온전히 외면당하는 시대이다. 저 유대 기독교인들처럼 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의 물욕에 따라 살아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순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선물로 주신 시간과 물질들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께서 하시는 일과 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바로 보고 느끼게 하시고 그 일에 동참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