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6:6-18
지금의 터키의 여러 도시(브루기아, 갈라디아, 무시아)를 서쪽으로 순행하나 어떤 도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건나가고 아시아 동쪽으로는 가지않게 되다가 바울의 환상에서 마게도냐의 남자가 그에게 와서 도와달라는 것을 보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마게도냐로 향한다. (지금의 터키)드로스에서 마게도냐의 빌립보까지 가서 머물다가 기도하는 곳에서 루디아라는 여자(옷단을 파는 여자)에게 전도해 그녀가 세례를 받게되고 그녀의 집안또한 구원을 받는다. 기도하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 바울에게 어떤 점치는 소녀가 몇일을 계속 따라다니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며 구원을 선포하고 있다고 외치니 바울이 귀찮게 여겨 소녀에게 붙어 있던 귀신을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낸다.
마게도로 부르심. 하나님께서 바울의 일행을 아시아로 돌리셨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여기서 중동지방에서 유럽쪽으로 복음이 건나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지금의 터키에서 그리스 북쪽에 있는 나라인 마게도냐를 복음이 정복하는 순간이다. 불과 300년전에 알렉산더 왕이 온 세계를 정복했지만 그의 나라는 몇 세대도 지나지 않아 붕괴되고 없어졌지만 그 위대했던 인간국가의 왕의 모국이였던 마게도냐에 예수님의 나라가 임하고 왕이신 예수님의 나라는 아직도 살아있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해 그 영토를 넓혀갈 것이다.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다.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할 수 있다.
루디아. 유럽에서의 첫 기독교이되는 영광을 지니게 된다. 단지 기도하러 나왔다가 복음을 받아드리게 되는 상황을 본다. 고넬료처럼 복음을 들으러 찾아가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의 공통된 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들의 마음 자세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매일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그 은혜가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의 밭은 겸허함으로 일궈진 하나님의 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된 곳이다. 루디아는 이 도시의 유명 상품인 옷단을 판매하는 상인이었기 때문에 하인들도 여러 명 거닐며 큰 집도 있던 부유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그 녀의 집을 빌립보의 첫 교회로 세우신다.
귀신들린 소녀. 그 시대에 상업적 목적으로 점을 치는 곳은 많았다. 마치 한국의 무당같이 어떤 귀신을 받아들여 그 어린 삶이 사람들의 돈버는 수단으로 사용됬던 것이다. 귀신은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알 고 있었고 그 때문에 위협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이것과 성경의 여러가지 예를 보면 귀신들이 얼마나 예수님이 누구이며 그 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 그냥 알고만 있다는 것에 끝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식에 있어서 귀신과 기독교인의 차이는 누구를 따르는 삶을 사는냐에서 달라진다. 귀신은 사탄 마귀가 하는 일을 일삼아 살아가는 존제이다. 하나님의 능력앞에서는 무력하지만 사탄의 뜻을 받아들여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이고 지옥으로 대려갈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존제.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가능이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케 하는 하나님의 종이다.
주님, 하나님의 부르심에 더 민감하게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항상 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소서. 육신은 너무나 약하나이다, 그러나 육신의 것들은 뒤로하게 하시고 위에서 오는 하나님의 것을 더 먹고 더 중요시 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