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8:12-23
아가지역의 새로운 총독 갈리오가 들어오자 유대인들이 다시 연합하여 바울을 공격해 재판에 세우며 율법에 어긋난 하나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라고 한다. 갈리오는 범죄한 자를 재판에서 보겠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에 관한 것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지시하며 재판에서 몰아내었다. 유대인들은 재판장 앞에서 회당장 소스데네를 때리지만 갈리오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후로 바울은 수리아로 떠나 안디옥에 이른후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다니며 모든 제자들이 믿음에서 굳건하게하였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진정하게 따르고 있다면서 왜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기보다는 단지 바울의 복음의 말씀이 더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자신들의 권력체계를 무너뜨리는 것 같아서이다. 정조때 신해박해와 신유박해를 통해 가톨릭교인들이 핍박을 받았던 이유도 유학가의 성리학파들과 실학파들이 권력형태를 유지해 올 수 있던 왕 중심적 사상에 위협을 받아서였지 어떤 유학의 덕치주의 철학과 대립되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조선의 왕이 아닌 예수를 왕으로 섬기라 하니 자신의 권력체계에 대한 위협이 아니면 무엇인가? 같은 이유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넘겨졌던 것이고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는 바울 또한 계속된 핍박을 받는 것이고 오늘 날 진정히 예수님을 선포하는 사람은 예수보다 더 권위를 세울려는 세상의 모든 권력과는 정면 충돌할 수 밖에 없게된다. 사탄은 오랜 시간 이것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세상 국력을 이용해 핍박하지 않고 단순히 사람들의 자신들의 뜻대로 살기 편한 환경으로 유도한다. 즉 자가신성화이다. 개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신격화시켜 숭배하는 사상. 종교적인 면을 띄고 있지 않지만 자신들은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라하며 스스로를 삶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간다. 예수님의 독점적인 선포는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과 불가피하게 대립되는 관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주님, 주께서 나의 삶의 진정한 주님이 되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