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February 2, 2018

New research says Christianity in US is growing stronger

(英/韓飜 下)
http://thefederalist.com/2018/01/22/new-harvard-research-says-u-s-christianity-not-shrinking-growing-stronger/
 
Before coming back to another Korean church I spent about a decade attending two conservative “white” churches. One was Three Rivers Church in Plainfield, IL, and another was Heritage Christian Fellowship in Albuquerque, NM. When I was a member of those churches, I always thought those churches were exceptions rather than a rule compared to the mainstream society. The commonality in both churches is a glimpse into how broken people of the Great American Experiment is coming back to the fold of Christ’s Church. Simply put, sinners repent and follow Christ. Not all people come from sad backgrounds, but testimonies were being shared by broken families, widowed spouses, ex-addicts, ex-criminals, struggling parents and children, and so on. Heritage was an exceptional church led by a group of people dedicated to the Scripture. You had a board of elders for preaching, teaching, pastoral outreach, and so on, and deacons just like any Biblical church, but along with such leadership, the congregation consisted of families who were homeschooling their children. I witnessed a consistent stream of people coming to accept Christ and getting baptized in front of the congregation. The morning adult bible study class was always packed full. The Biblical church discipline was also put into practice when a couple was trying to have a divorce. The discipline was executed faithfully to what the Scripture had mandated. Even the selection of elders methodically followed the Scripture to its fullest. Of course, people who didn’t agree with such practice would simply disappear from the congregation, but the growth seemed sure — not only numerical growth, but it was easy to feel the spiritual growth of the congregation.
 
Sadly, such experience of Biblical church leadership and growth was not as common with Korean churches. Compared to those English-exclusive American churches, the Korean churches tended to have much more of so-called educated class of people. Few things to note: the unspoken emphasis and implicit theological attitudes still heavily leaned towards a disguised version of prosperity gospel, perhaps as a reactive relic of recent past, historical experience. (e.g. There are many who believe their job is to preach to help find congregants find happiness as a Christian. They might as well start yoga classes at church.) Leadership is usually more concerned about being respectable to outsiders, and their attention to the type of people they want to attract reflects it. There are many healthy churches for sure, but a lot of pastors I had worked with in the past still showed much divided attention with gimmickry of latest church growth trends, rather than spending sufficient time in the Scripture as a faithful servant of the Word. Ironically, at the moment, I’m attending a Korean church associated with a relatively liberal mainline denomination, and there, the pastor is dedicated to studying and preaching from the Word only, in the spirit of sola scriptura, sola fide, and sola gratia (in the most of context). I’m grateful for this. However, as for the many of Korean churches, there isn’t a mass exodus of younger generation from Korean churches, but it has been a consistent evaporative loss. Thanks to a heavy cultural emphasis on worldly success predicated upon a high level of education, a lot of them end up joining the social and intellectual realm and ranks of mainstream elites, thereby inadvertently playing by the rules of those hostile to the Biblical Christianity. Largely, Korean American churches still remain as a subculture of the mainstream, an immigrant church, and thereby catering to the needs of people trying to adapt to the greater, corrupt culture rather than actively encouraging the abandonment and the transformation thereof. We shall see how God will use the Korean and Korean American churches in the years to come, but I think it’d greatly help with Lord’s work if more American churches approached the immigrant churches as Jesus did with those two walking to Emmaus.
 
韓飜
 
새로운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독교는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다
 
http://thefederalist.com/2018/01/22/new-harvard-research-says-u-s-christianity-not-shrinking-growing-stronger/
 
다시 한인교회로 돌아오기전에는 십년정도동안 두개의 보수적인 백인교회를 다녔었다. 하나는 일리노이주에 있는 三江 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뉴멕시코주의 헤리테지 (전통유산) 교회 였다. 다니면서 그 교회들은 주류사회의 대부분의 교회에 비해 항상 예외라는 생각을 했었다. 두 교회의 공통된 점은 미국의 대실험 사회의 망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말하면 죄인들이 회계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양상이다. 다들 어려운 삶의 배경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간증들은 이혼으로 깨진 가정들, 미망인들, 과거 마약 중독자들, 전과범들, 힘들어하고 있는 부모와 자식들 등이었다. 헤리테지는 이례적인것 같아보이는 우수한 교회였다. 지도자들은 다 말씀에 헌신된 장로들이었다. 설교 장로, 가르치는 장로, 목회 장로 등등이 있었고, 그리고 어느 성경적 교회처럼 일하는 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두드러지게 다른 것은 교인들의 다대수 가정이 아이들을 집에서 홈스쿨(학교로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꾸준히 새로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인들 앞에서 세례를 받고 있었다. 주일 아침 어른 성경공부반은 항상 꽉 차있었다. 어느 가정에서 이혼을 언급하고 있을때 성경적 교회 차원의 징계도 행해지고 있었다. 징계는 성경에서 말하는 그대로 따라 이루어졌다. 장로는 선택하는 과정또한 성경말씀 그대로 따라 행해지고 있었고, 어떻게 따라 행해지고 있는 과정 또한 교인들에게 가르쳐지고 있었다. 물론 이런 징계나 과정에 동의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숫자적으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성장또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오래다녔던 한인교회에서의 경험을 생각할때 성경적 교회 지도와 성장은 그렇게 자주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백인교회와 비교했을때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한인교회에는 교육수준이 확실히 더 높다는 사실이다. 한인교회에서는 다음이 관찰된다: 무언으로 행해지고 암시적 신학적 경향은 아직까지도 위장된 기복신앙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현시대 과거역사의 유물이지 않나싶다. (e.g. 많은 목사가 자신의 일은 설교를 통해 교인들이 기독교인으로서 행복을 찾는것이라고 믿는다. 그냥 교회서도 요가 수업을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지도층은 주로 외부인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모습으로 보이기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반영해 주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의 형태가 같다. 매우 많은 건강한 한인교회가 있다 그러나 과거에 같이 일했던 많은 목사들은 아직가지도 최신 교회성장에 대한 술책에 관심이 흩어져 있었고 하나님 말씀의 충실한 종으로서 충분히 하나님의 말씀에는 시간투자를 하고 있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 비교적으로 진보적인 주류기독교단에 속한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현 목사님은 전통적인 말씀만, 믿음만, 그리고 맥락에 따라 은혜만을 바탕으로 성경말씀만 공부하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이시다. 이 때문에 감사하다. 그러나, 많은 한인교회에 대해서는 갑작스런 젊은 세대의 출애굽기같은 탈출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 증발되고 있는 현상이다. 고등교육을 통해 세속의 성공에 매우 큰 초점을 두는 문화 때문에 그럴까? 많은 한인들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통해 손 쉽게얻은 신분상승을 통해 주류 엘리트의 사회적 정신적 영역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의적으로는 아니겠지만 성경적 기독교 문화에 대적하는 사람들을 따르는 양상이 이루어지게 된다. 크게보면 아직 현제 실존하고 있는 한인교회들은 주류사회속의 小문화적 자리, 즉 이민교회로 있으며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부패된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을 돕는 것에 비중이 더 가 있고 부패된 사회의 모습을 버리고 더 적극적으로 변화시킬려고 하는 노력은 적어보인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미국에 한인교회들을 어떻게 쓰실지 시간을 두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교회들 또한 엠마오를 가는 두 제자에게 다가갔던 것 처럼 이민교회에 접근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더 적극적으로 돕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安時: 2018年 2月 2日 (金)

2/2/2018 (금)

행 5:27-42

종교 지도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설득시켜 공회앞에 대려와 청문회를 연다. 기본적인 질문은 자신들이 예수를 죽인 것에 대한 정의를 문제삼기위해 예수의 이름을 가르치느냐 였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는바 이며 복음을 통해 예수를 증거하는 사도로 세운바 되었음을 알렸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더 크게 화를 내며 죽이려고 할때 가말리엘이라는 율법교사가 과거의 이질적 종교운동도 없어진 것을 참조로 그냥 참고 관망하여 어떻게 되는지를 두고 보는 것이 더 지혜로운 길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진정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역사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사도들을 채찍질하여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게 하지만 사도들은 예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을 기뻐하며 밖에 나가 계속해 예수의 이름을 전도한다.

자신들이 죽인 예수에 대한 언급을 보면 공회를 연 Sanhedrin의 지도자들은 다 하나같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엄격히 지키는 율법으로도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그 어떤 타당한 것도 없이 진행되었던 것이었기때문이었다. 자신들이 무데뽀로 추진한 불법적인것이었고 그것도 모잘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때의 사건을 제조작해 유언비어를 퍼뜨린 당사자들이었다. 이렇기에 죄책감이 목까지 올라오지는 않았을까?  사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앞에 인간의 반응은 간단해야 한다. 그냥 이실직고하고 자백하여 회계하면 된다. 아무리 큰 죄라도 회개하는 사람은 절대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회개는 커녕 더 큰 죄를 범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죄로 인한 결과, 즉 죄값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 이어져 회계까지 가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얼마나 슬픈가.  그러나, 우리도 같은 행동을 보일때가 많다. 마치 심리학의 fight or flight 반응처럼 죄책감을 크게 느끼는 와중에 우리는 여기까지 왔는데 하면서 담대하게(?) 자포자기식으로 그냥 더 큰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범해버린다. 진정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면 이렇게 행동하면 않된다. 회계로 직결해 하나님앞에 이실직고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 바른 모습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운바된 사도들은 이러한 핍박과 고난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담담하게 계속 부르심에 충실하다. 사실 여기 나타난 종교지도자들은 이 시대 사는 유대인들의 모든 공간적인 환경, 정신적인 삶과 문화를 지배했던 사람들이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제일 잘나가는 드라마, 영화, 정치, 경제적 세력들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때는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대상이었다는 것. 그러나, 사도들은 이런 세력들 앞에서도 전혀 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순수한 기본적인 원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다. 그 어떠한 세속의 세력에도 굴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을 너무도 단순한 순종으로 보여주고 있다. 목에 칼이나 총이 들어와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에만 충실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때문이다.  이 세상 하늘이 무너져 머리위에 떨어진다해도 육신은 깨져 죽는다해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있기에 우리는 한 발더나가 기뻐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각오가 되있어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본적인 모습이고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죽음을 각오하며 복음을 위한 육신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그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기꺼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해 나가는 것이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주님, 너무도 편하게 메마른 기독교인의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정작 육체적 핍박이라도 있으면 잠에서라도 깰텐데요. 이러나 풍족한 삶에서 나태해지고 영적으로 무뎌져 죄에 빠지지않게 말씀으로 깨워주시고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진정한 기독교인이되게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