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June 22, 2020

착한소비 vs 착한사람

인간의 역사를 경제적인 것을 주로 보는 추세는 무신론적인 현대인의 사회에서 종교를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물질중심의 종교적 해석으로만 들린다. 미덕의 기준도 쉽게 이해되는 공리주의에서 멈추어져 있고 더 근본적인 질문은 아에 생각조차도 할 필요도 없게 만드는 너무나 간편한 해석으로 설명되있다. 착한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착함 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착함의 기준 또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모두 공유하는 가치관이란 것을 찾게 된다. 그럼 인류 모두 공유하는 가치관은 어디서 발생되었는가? 진화 무신론적 발상으로는 카를 융의 해석으로는 어떤 세계의식이 있어 모든 사람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고 정신분석학계에서는 이야기한다. 사실 힌두교의 우주적 아만(atman)의 종교적 개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여기에 현대식 진화론을 끼워넣은 설명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어떤 초 전형적인 가치관을 공유해 왔고 그것은 인간의 자의식과 인간사회를 가능케 했으며 이것이 인간과 원숭이를 갈라놓은 것이라 설명을 한다. 그러나, 천년 만년 원숭이들에게 도덕을 가르치면 무엇하겠는가? 원숭이는 원숭이 밖에 낳지를 못한다. 원숭이가 절대 사람을 낳지 않는다. 그냥 밑에 너무 쉽게 깔려있는 진화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절대로 언급되지 않는다. 왜냐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과학과 개인경력을 쌓았기에 그것을 부인하기에는 有神論的인 위치를 취하여 하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하나님의 인격에서 사람의 가치 기준과 어떤 것이 인간다운 것이지의 대한 답이 나온다. 그래서, 수만명의 정신 환자들을 치료한 현대 정신분석 융학자들도 성경이 인간 심리에 제일 적합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튼, 희생의 기본은 하나님의 인격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착한소비를 가능케 하는 근거지인것이다.

외로움

현대사회의 재일 큰 고질병은 외로움이다. 미국 신학자 Francis Schaeffer도 현대인의 재일 큰 문제가 외로움이라 가르쳤고 스위스에 라브리 공동체를 만들어 누구라도 와서 사람들과 연결하고 생활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오로지 용감한 신앙만이 우리가 겪고 있는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했었다. 혜민 스님은 타국의 복지시스템과 현대사회에서 나름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라는 매우 당연하면서 중복적인 방향으로 가르키고 있다. 그렇다, 지금 인터넷으로 사람과 사람들끼리 매우 연결되어 있지만 마치 거대한 바다 위에서 목말라 죽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이다. 아이들이 사람들과 관계맺는 부분에도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어 깊이 있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더 줄어가고 있다. 거기에다가 인공지능이 사람들을 대면하며 서비스를 해주고 지금 순간에는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더 고립된 생활에서 당연히 더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이란 문제가 더 확대되기는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나라 중 미국이 코로나에 더 취악한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 만큼 사회의 대면하는 연결고리에 의존되어 왔나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근처 가게에서 줄서고 기다리고 있으면 누구든 쉽게 말을 건내주고 받는 문화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길거리에서도 누군가 쉽게 말을 건내면 마치 옆집 사람인 것 처럼 답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미국 문화다. 이러한 사회에서 코로나는 심지어 이런 간단한 사회적 교차까지 없애버리니 미국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

집에 와이프와 아이 셋과 근처에 어머니, 심지어는 여동생까지 어머니랑 있겠다고 와 있어서 항상 사람이 있고, IT에 종사하다 보니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외롭다란 생각을 별로 할 기회가 없다. 외롭다란 생각이 들 정도로 좀 한가한 시간을 보내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라도 쉬지 않고 계속 읽고 싶다. 글쓰는 것은 그냥 생각나는데로 이렇게 라도 쓰는 것에 일단 만족이다.

https://youtu.be/BWdkctgaCNw

치매와 연관된 것들

  1. Age (나이)
    Much more vulnerable after age of 65. The risk doubles every five years, and then 1/3 of getting it after age of 85. 65세 이후 더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며 그 이 후 5년 마다 증폭된다. 85세 이후는 걸릴 가능성이 33% 정도 된다.
  2. Family story (가족 사항)
    부모나 형제 자매중 치매가 있으면 확율이 높아진다.
  3. Genetics (유전)
    Only less than 1% of the cases are related to genes. 사실상 1%도 안되는 해당 사항이다.
  4. Other factors (다른 사항)
    1. Head injury (두부외상)
      머리는 항상 보호해야 한다.
    2. Heart-head connection (심장 건강)
      심장을 튼튼히 하기 위해 보통 때 운동을 꾸준히 해야 머리 건강에 좋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출처: 미국 알츠하이머 협회

한국을 第一치매國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치매가 재일 많다. 그 다음엔 일본이다. 홍창형 교수는 치매가 나이가 들면 모두 다 겪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가 자연히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 아직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떤 장애가 있으면 사회에서 외면당하기 쉽운 사회가 한국사회이다. 노인복지천국이란 일본도 老치매환자들을 돌보느라 돈을 너무나 많이 쓰고 있어 이것을 충당하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세금을 더 내고 있다.

생각에는 그냥 개인적으로 머리의 신경 접합부들을 더 많들고 운동을 꾸준히 해주면 치매를 오래 지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두뇌학자들이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되기 때문에 나이가 있어도 뇌를 쓰면 인지적 비축분(cognitive reserve)이 생겨 치매증상을 늦출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 그럼 어느 정도써야 도움이 되는 수준인가? 그것은 마치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맞이한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 즉 개인에게 어느 정도 닺기 힘든 수준이어야 하며 정신적으로도 힘들다란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전적 수준이다. 그것은 내가 쉽게 쥘 수 있는 목표보다 조금 더 먼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간단하게 풀 수 있는 수준, 매일 30분 정도 한다고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 이 포인트를 잊어서는 않될 것 같다. 나에게 도전이 되고, 내가 쉽게 도달 할 수 없는 수준인것이다. 그 수준이 되어야 두뇌에게 도움이 되는 수준인 것이다. 물론 중년이 넘으면 내가 무엇하러 이런 것을 이렇게 힘들어하며 배워가야하냐 하며 스스로 의욕을 꺾어 버리는 것을 많이 본다. 이런 흔한 정신이 한국사람들 사이에 많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치매에 많이 걸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냥 수동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TV 시청 정도로 배우는 것에 충족하고 사는 생활 습관이어서 더 많은 한국인들이 치매에 걸리지 않나 생각해 본다.

중년이 넘은 분들을 위해 다음을 추천해 본다: 새로운 언어 배우기, 내가 읽지 않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책읽기, 음식 만들기를 시작해 보기, 코바느질 배워보기, 몸에 너무 많은 무리가 가지 않는 검도 같은 운동을 시작해 보기 등이다. 다 내가 해본 것이고 지금도 계속 이어나가는 것들이다. ㅎㅎ.

다른 요점들은 반복, 적용, 기타등등 보통 학습에 연관된 기본 상식이다.

코가 석자

힘들기로 잘 알려진 공부 분야에서 위촉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젊은 친구가 중국이 삼성을 못 따라간다고 자부심을 표했고 그것은 삼성이 외계인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 만큼 앞서 있다란 표현이겠지만 더 크게 보면 메모리 분야에서만 상당한 비율의 시장을 가지고 있지 비메모리 분야까지, 즉 인텔과 AMD가 만들어네는 CPU 같은 분야를 포함하면 비교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적은 규모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음식 시장에 비유한다면 마치 세계 김치 시장의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모든 음식 시장에서 주름잡을 정도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중국과의 비교도 그렇다. 쉽게 결론부터 말하면 비교할 상대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2050년 정도면 인구 감소 때문에 한국은 사라질 위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고 반면에 중국은 인구 감소를 일부러 노력하고 있는데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수 백년, 아니 수천년 그래왔다. 일본하고도 비교해도 일본은 이미 토쿠가와 시대에 세계 4위에 드는 인구를 가진 도시가 있었고, 한국도 상당히 발달된 농업으로 인해 이미 G20에, 만악 그 때부터 있었다면, 16세기 부터 가입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 우리 부모 세대까지 부유한 한국을 경험했던 것이지 이로 부터는 그런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인간 역사를 보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이 가난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중산층 정도만 되도 과거의 역사에 비해 왕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볼때 가난이란 것은 모면하기 힘든 것이 되는 세계로 변화되는 것 같다. 한국인으로서 또는 미주 한인으로서 한국 드라마와 노래가 잘 팔린다고 삼성 제품이 잘 팔린다고 으슥그럴때가 아니다. 우리코가 석자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돌아가는 것을 보면 다음 세대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다

국가별 창업 실패 횟수를 보면 한국의 어떤 경제적인 면보다 문화및 사고적인 면을 보는 것 같다. 보통 사업에 한번 실패하면 가정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는 사업을 하지 말라고 말린다. 물론 한戰이후 대기업 위주로 돌아갔던 경제 방침때문에도 그렇겠지만 수십년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보증을 서줘서나 아니면 빛을 져서 죽을때까지 고생만하다 간 사람들을 많이 봐와서 그런 것 아닐까? 이런 인식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 기본 지침와 방침들이 세워져야 한다. 그냥 돈 쓰라고 아니면 취직에 도움되라고 용돈 정도나 주고 있는 한국 정부와 서울 지차제 정부를 보면 콧 웃음이 나온다.

“BTS and K-pop’s future” by Si-hyuk Bang

BTS is unique in that all of the members freely produce their own version of music and performances. They have all three factors of internal motivation: autonomy, purpose, and mastery. Once it’s put into a motion, it becomes a self-sustaining group of success. Add to this, the group synergy, and you have a world-class formidable group. Remember, they started out as a group of country bumpkin te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