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소비 vs 착한사람

인간의 역사를 경제적인 것을 주로 보는 추세는 무신론적인 현대인의 사회에서 종교를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물질중심의 종교적 해석으로만 들린다. 미덕의 기준도 쉽게 이해되는 공리주의에서 멈추어져 있고 더 근본적인 질문은 아에 생각조차도 할 필요도 없게 만드는 너무나 간편한 해석으로 설명되있다. 착한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착함 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착함의 기준 또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모두 공유하는 가치관이란 것을 찾게 된다. 그럼 인류 모두 공유하는 가치관은 어디서 발생되었는가? 진화 무신론적 발상으로는 카를 융의 해석으로는 어떤 세계의식이 있어 모든 사람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고 정신분석학계에서는 이야기한다. 사실 힌두교의 우주적 아만(atman)의 종교적 개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여기에 현대식 진화론을 끼워넣은 설명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어떤 초 전형적인 가치관을 공유해 왔고 그것은 인간의 자의식과 인간사회를 가능케 했으며 이것이 인간과 원숭이를 갈라놓은 것이라 설명을 한다. 그러나, 천년 만년 원숭이들에게 도덕을 가르치면 무엇하겠는가? 원숭이는 원숭이 밖에 낳지를 못한다. 원숭이가 절대 사람을 낳지 않는다. 그냥 밑에 너무 쉽게 깔려있는 진화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절대로 언급되지 않는다. 왜냐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과학과 개인경력을 쌓았기에 그것을 부인하기에는 有神論的인 위치를 취하여 하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하나님의 인격에서 사람의 가치 기준과 어떤 것이 인간다운 것이지의 대한 답이 나온다. 그래서, 수만명의 정신 환자들을 치료한 현대 정신분석 융학자들도 성경이 인간 심리에 제일 적합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튼, 희생의 기본은 하나님의 인격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착한소비를 가능케 하는 근거지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