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rchives: mhan

Get a Biblical life

Instead of another happy new year, please, please get a Biblical life this New Year.

If you believe the Word of God to be the highest authority, the world, including those within the church, will ridicule you for being bigoted, patriarchal, and even discriminatory, but living a Biblical life means that you follow the footsteps of Christ. The Church has, and should NEVER be a platform for preaching egalitarianism, women’s rights, social justice, or ANY OTHER agendas of this world. Only the Word of God is to be upheld as the RULE and the STANDARD for ALL Christians, and also proclaimed in churches. All other social consequences are mere byproducts of the Word of God. There is only ONE true version of Christianity, and that is a Biblical Christianity, just as our Lord Jesus Christ had believed and lived in accordance to the Word of God. Fakes are the pastors who has to give apologies for simply believing the Word of God as is, and those who claim to believe in the Word of God and yet deny its relevance and power in our own lives.

1 By the humility and gentleness of Christ, I appeal to you—I, Paul, who am “timid” when face to face with you, but “bold” toward you when away! 2 I beg you that when I come I may not have to be as bold as I expect to be toward some people who think that we live by the standards of this world. 3 For though we live in the world, we do not wage war as the world does. 4 The weapons we fight with are not the weapons of the world. On the contrary, they have divine power to demolish strongholds. 5 We demolish arguments and every pretension that sets itself up against the knowledge of God, and we take captive every thought to make it obedient to Christ. 6 And we will be ready to punish every act of disobedience, once your obedience is complete. – 2 Corinthians 10:1-6

18 If the world hates you, keep in mind that it hated me first. 19 If you belonged to the world, it would love you as its own. As it is, you do not belong to the world, but I have chosen you out of the world. That is why the world hates you. 20 Remember what I told you: ‘A servant is not greater than his master.’[a] If they persecuted me, they will persecute you also. If they obeyed my teaching, they will obey yours also. 21 They will treat you this way because of my name, for they do not know the one who sent me. – John 15:18-21

어느 언어학 교수의 설명을 듣고…

글쎄… 지난 40여년 동안 본인 이름 하에 논문 하나 없는 사람이 콜롬비아 대학 교수였다고? 학계와 역사는 이상한 렌즈(Churchward의 무제국의 인간언어시發 이론을 기본으로 함)로 해석하고 자신만이 언어의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고 흔한 표절문제 때문에 그 마스터 키를 공유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이러한 사고가 평생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의 태도란게 조금 非人間的이고 동국대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 치고는 弘益精神에 위반되는 것이니 아무리 설명을 해도 信賴가 가지 않고 오히려 학교 이름의 위상만 떨어뜨리는 것 같다. (e.g. Inca의 어원을 in (사람)+ca (태양) 나누어 태양의 사람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inca는 Quechuan語로 왕족이란 뜻일뿐이다. 지금 중국어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영어 Mandarin(中之宮臣) 의 어원과 비슷한 형태이다. 오히려 더 나은 설명으로 잉카의 태양신인 inti 의 ‘in’ 을 태양으로 설정했다면 모르나 끼워맞추기 식의 해석은 사람人과 억지스러운 연결을 하기 위한 해석이라 밖에 설명이 안된다.) 보수적 신학으로 유명한 신학교를 나오고 보수적인 교단에 몸담고 있는 목사들이 오랜 개인적인 공부를 통해 창조론을 부인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는 커녕 사람들이 만든 신화라 믿는 믿음없음을 신앙고백으로 삼으면서 표면적으로만 성서적 교회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을 기준으로 학교를 판단하기는 조금 억지라고는 생각한다. 자신의 믿음 없음을 슬퍼하고 회계로 나가는 조짐이 안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들을 떠났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사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 팔아 자신의 영광을 위한 사역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뿐이다. 아무튼, 배움을 갈급해 하는 한국의 수만명이 이런 분을 따르고 있는 선생이라 하니 아쉬운 마음뿐이다.

마스터 키를 자신만이 가지고 있다란 주장 또한 지금 온 세상을 휘덮고 있는 영지주의(gnosticism)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급격히 발전해 (via Derrida, Foucault, Lyotard, Baudrillard, etc.) 서양에서 보이는 형태는 절대진리와 가치의 근거보다 더 높은 것이 있다는 전통파괴적형이 더 강조되고 있음.) 거의 모든 해석 자체도 주관적인 짜집기 식이니 訓詁學의 기본 조차도 무시하고 있다 (e.g. 산스크리트어와의 유사성은 불교경전의 번역으로 인한 어원에 대한 배경연구나 가능성에 대한 관심 자체가 두드러지게 빠져있다.) 성서해석학에서도 이런 사람이 어처구니 없이 많으니 (via 성서비평학의 Hase > Wellhausen, Budde, Eissfeldt, etc.) 어떻게 傲慢함으로 무너진 이런 학계의 기본 토대부터 바르게 잡을 수 있는지가 다음 일세기의 숙제이다. (e.g. 고고학: Mt. Ebal에서 발견된 Paleo-Hebrew form 이 페니키아어의 사용보다 더 오래되거나 또는 同時用된 것을 간주하면 메소포타미아文化發/바벨론發說을 기반으로 하는 비평적 고고학과 언어학의 교과서들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經驗主義에 입해 證據를 따라 해석한다고 하면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는가?)

In his pocket

The rabbis advised:
keep two truths in your pocket,
one should read:
I am but dust and ashes
and the other should read:
the entire world was created for me

An 8-year-old has
something else in his pocket.

Confetti.

Why?

It’s his emergency confetti,
he says,
during these raw days
he carries it with him
everywhere
just in case
there is good news.

그의 주머니 속엔

라비들은 조언했다:
주머니에 두 가지 진실을 간직하라,
하나는 이렇게 적혀 있어야 한다:
나는 먼지와 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적혀 있어야 한다:
온 세상은 나를 위해 창조되었다

8살짜리 아이의 주머니 속엔 다른 것이 있다.

컨페티.

왜?

그것은 비상 컨페티라고 그는 말한다,
이 험한 날들에
그는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어디를 가든지
그것을 가지고 다닌다.


聖書訓詁學

改新敎의 改革을 否認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今生人들만이 最高의 생각을 할 수 있는 能力을 가진 것 마냥 傲慢함을 보이니 더 以上 숨을 쉬지 않는 祖上들이 남긴 글들은 外面하고 있는 것이 事實이다. 그래서 現代 西洋의 hermeneutics 또는 exegetical studies 에서 아무런 疏도 없이 文法의 바른 理解만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을 基本으로 하지만 다음 段階에서는 訓詁學을 適用하는 것도 必要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猶太人들의 聖書學의 基本的인 方法이기도 하다. 改新敎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이유는 不正한 解釋이 아우러져 獨自的이거나 個人的인 解釋들이 主流가 되며 亂舞하여지기 때문이다. 루터의 宣言文 “Here I Stand”는 훌륭했던 것이지만 時間과 같이 바뀌는 文化的 觀點을 통한 聖書解釋은 答보다 問題를 더 불러오고 있다. 基本的으로 過去를 尊重하며 나아가는 聖書訓詁學이 必要한 理由이다.

TIL 2023-11-13

기지국가론(基地国家論)이 바탕되는 인도태평양전략은 日의 전략판; 미중패권전쟁 (인태전략 > 첨단기술경쟁)

2010 Shock: Japan gave 2nd place in world economy to China; Senkaku

2012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본은 극우로 탈바꿈 > 아베가 2012년말에 당선됨

Towards a more volitional ministry, rather than only-emotion ministry

The constant is the proclivity to win people to our point of view on metaphysical aspects of our faith that we hold dear rather than leading them to Christ. The most important part of the calling is our own closeness to Christ, and thereby knowing where to lead others to. “You can’t make disciple of others without being a disciple yourself.” So, the commands of the Great Commission makes the prerequisite rather crystal clear. It’s given to someone who is already a disciple. Without following the footsteps of Christ, it can only be a confusing journey of halfhearted mediocrity.

As soon as Adam compromised on the word of God, everything fell apart. Just as we can’t even make the tiniest particle to split on our own, we can’t hold together what’s broken. It takes a miracle and God is more than capable of that. As Thomas a’Kempis reminds us, we must read His words humbly, simply, and honestly, and be cautious of being caught up in our greed of learning rather than obeying the words simply once the essential message is grasped.

Reflection on https://utmost.org/the-method-of-missions/ and TK I-IV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중고등부 사역 시절때 자주 불렀던 찬양 중 Steve Green 의 People Need the Lord 가 있었다. 절망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는 좋은 메시지이다. 실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해서 가는 것 보다 주님께서 명령하시기 때문에 가야 한다는 가사가 더 주님의 사역에 가깝다고 봐야 하겠다. 사람들의 필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주님의 사역에서 있지 않았지만 그것은 포괄적인 전제하에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주님의 감정에 대해 언급한 구절들에는 주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라는 정도이지 그것이 주님의 사역을 특징짓는 구절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기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에 나는 순종할 뿐이란 사역이 중심을 이룬다. 사도들을 보내실 때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 같이 가라고 하셨지 측은지심으로 저 많은 사람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라는 어떤 인간의 깊은 감정에 호소하시는 말씀은 전혀 없다. 밀물처럼 등락달락 거리는 인간의 감정을 따라 가는 사역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포장하는 죄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

사람들과의 의견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가르치지 말라고 말하고 심지어 사역자체에서도 그것이 반영되는 것을 본다.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보다 인간의 감정을 따르는 사역은 이미 죽은 사역이고 하나님의 관점보다 인간의 관점을 더 중요히 여기는 잘못된 사역이다.


Just as Father had sent me

There’s a praise song called People Need the Lord by Steve Green which I had sung often as a youth pastor. It has a good message of the fact that we need to reach out to people who are in despair and lost. However, the message that we are go to people because of God’s command is probably closer to the Lord’s ministry than the one that focuses on the needs of people. Even though there was no direct mention of the need of people in Lord’s ministry, it is one that is generally assumed in the background. When it comes to appeal to emotion, the gospels only go as far as mentioning that Jesus had compassion on people, but that does not characterize his ministry as a whole. Jesus merely mentions that he is only doing what he does because God had sent him and that God had commanded him and not much more. When Jesus sends his disciples out he tells them that he is sending them just as God had sent him, not because they ought to feel deep compassion for the lost people and fill their needs. There is no profound appeal to emotion that rises from compassion. Is there a greater sin than packaging one’s ministry as being led by the Spirit when it is merely obeying the ebb and flow of one’s own emotional states?

Sometimes, I see some saying you shouldn’t try to teach people in order to avoid some conflicts of opinion, and that is also reflected in the ministry as well. The ministry that puts people’s emotions above the command to teach that everything Jesus had taught is already a dead ministry, and a wrongheaded one for sure if it values the opinions of men above God’s.

Reflection from https://utmost.org/classic/what-is-a-missionary-classic/

모스트모던 시대의 모임

(序文: 요즘 학계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들은 現代에 맞춰진 정치문화적 요구에 반영되는 재건주의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것들이 많고 인간 역사 대대로 내려온 것들의 충분한 이해와 지속성의 필요성은 시야에서 없어진지는 근 70여년이 되고 있는 現時代精神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과거와 맥을 이루는 관점을 제시한다.) 여자의 조언을 따르거나 여성적 인도자는 최대한 의견의 충돌을 줄이는 방향을 잡는다. 여성적인 성격은 근본적으로 감정적 충돌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는 집단 나르시시즘의 요소가 강해서 상대를 타인으로 규정하는 순간 벽 밖에서 만들어지는 그 어떤한 견해는 벽안의 가족들과만 화평하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는 우물과 같은 조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것은 그릇이 작은 것과 비교되어 왔던 것이다. 인도자의 역활은 기본적으로 의견의 충돌을 회피하는게 아니고 충분히 양면의 의견을 이해하고 가운데서 만날 수 있게 돕는 역활이다. 자신이 그 대화의 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란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확고히 해야하며 기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충분히 열린 대화의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 그렇게까지 확고한 의견이라면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사람을 설득시키는 방법의 첫 단계는 먼저 충분히 이해하고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받았다는 것을 전하는 것에 있다. 이 또한 쉽게 어떤 얕은 수단으로만 이해하고 실행한다면 인간적인 기본이 미숙한 사람이라고 봐야겠다. 교회라는 배경안에서는 여성적 인도자는 아주 간단하고 제일 강력한 회피 전략으로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들면 천사 자신의 마음에 안들면 악마로 만들어 버리는 전략이 비일비재하니 교회가 계속 세속의 단체들보다 못한다 말을 듣는 것이다. 남성적인 인도자는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되 상대가 자신의 의견이 존중을 받았다까지 느끼게 하는 것이 부족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고 상당히 높은 이상을 품고 있다하더라도 제일 먼저 더 높이 계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첫 단계이고 그 다음은 사람을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에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이 확고한데 인간의 다른 의견과 생각을 두려워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개인적인 의견이 옳다 생각되면 그 만큼 상대방의 다른 의견을 통해 더 완성도 있는 의견으로 다져지거나 바뀌어지거나 확인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충분한 검토와 생각이 뒷밭침되는 의견은 강하게 내세워야 할 책임도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충돌이 있으면 잘 이겨나가면 된다. 옹알이도 충분히 들어주다보면 이해하는 경지까지 갈 수 있다.

어느 회의라든지 모임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1. 극적인 표현은 하지 않는다.
  2. 상대방 생각을 다 아는 것 처럼 말하지 않는다.
  3. 상대방에게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
  4. “나” 아니면 “제 생각으로는” 라는 단어를 더 많이쓰고 상대방의 헛점이나 잘못된 것은 가능한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구분화 시켜서 확실하고 자세히 지적한다.
  5. 용건이 있으면 종합적으로 말하지 말고 상세히 말한다.
  6. 참을성있게 상대가 무엇을 길게 말해도 끝까지 듣고 더 듣고 싶다는 인상을 남겨주어야 한다.
  7. 어떠한 불평이라도 방어적 태세를 취하지 않고 들어준다.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해 주는 최소한의 방법이고 내용보다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포스트모던 가치관에서는 개인의 감정이 어떤 사실의 절대성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잘못된 가치관이지만 미성숙한 사람이 더 많아진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모임진행법으로 생각된다.
  8. 모임을 인도하거나 사회를 본다면 중립을 유지하고 안건을 내지 않고 오로지 사회와 중재에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사회자의 말은 자동으로 권한을 쥐고 있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안건을 제시한다는 것은 동일한 무게의 안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공평한 제의라는 감정과 의견이 고체되기 쉬워지고 분열이 나온 안건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만은 더 증가할 수 밖에 없어진다.

TIL 2023-10-09

世는 숫자 30을 의미하는 卅에 가로 휙 둘을 더하면 세대를 의미하는 세 자가 된다. 고대에서도 대략 30이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いくつかの日本食堂では週末だけ割引メニューがある。 週末と平日の区分をしっかり知って食堂に入らなければならな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