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時: 2018年 2月 21日 (水)

행 13:13-31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안식일날 버가의 회당에서 앉아 있으니 회당 지도자가 권할 말이 있으면 해달라고 하자 바울이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조들을 선택하사 이집트에서 크게 하셨고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사 40년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참으신 후 가나안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었다. 이것이 450년 동안의 일이었고 사무엘 선지자때까지 사사(법관들)들를 주셨지만 백성들은 왕을 달라고해서 40년동안 사울을 세우셨고 그 이후 다윗을,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했던 다윗의 자손으로 언약하신대로 구원자 예수를 주셨다. 예수가 오기전에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나는 그가 아니요 나는 그의 신발 끈 조차 매는 것을 감당치 못한다 하셨다. 이 구원의 메시지 (복음) 이 우리에게 선포되었으니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매 안식말마다 예수를 예언하는 말씀을 읽으면서도 예수를 몰라보고 말씀도 이해 못해 그를 처벌함으로 예언의 말씀을 성취시키었다. 죽을 죄를 짓지 아니하였지만 그들은 빌라도에게 넘겨 사형에 처해지기를 간구했고 예수가 십자가에 죽고나서 그를 무덤에 옮기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사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바울의 사역이 시작된다.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이다. 버가에서 선포되었던 바울의 메시지.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이란 구약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구약과 신약의 너무 깊은 선을 그어버린 이해는 위험한 성경관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대한 것들이 구원 역사에 흐름에 일맥 상통하는 것들이고 그 가운데 약속하셨던 것들이 예수안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되는 것을 본다. 즉 성경 전체의 하나님을 바로 아는 바탕에서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떤 역사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죄로 인해 타락했던 인간 그러나 하나님께서 작은 무리들을 선택하셔서 인류의 진실된 역사의 기록을 보존케 하시고 백성들을 대하시면서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시고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성취하는 복음이다. 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재일 잘 전할 수 있는 사람이 구약의 성경 말씀을 달달 외우고 있었던 바울 (히브리어 이름: 사울) 이었다. 불과 짧은 시간 전까지만 해도 눈에 불을켜 그리스도인들을 다 전멸시켜 죽여버릴려했던 바울. 그 만큼 하나님의 사명을 뜨겁게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울이 지금은 자신이 핍박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유대인 누구보다도 성경을 더 잘 알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고 어떻게 예수를 통해 그 언약의 말씀이 성취되었는지 설명할 줄 알 수 있었던 사람이 바울이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우연이란 없다.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자신의 선하시고 좋으신 뜻으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주님, 사도 바울을 준비하신 과정을 보며 그 아무리 최악의 상황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준비하시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 일어나는 일 가운데 불안속에 초조해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주관아래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주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승리하게 인도하여 주소서. 주의 나라임하사 주의 뜻을 이 삶을 통해 이루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바울 일행은 도착한 후 첫 안식일 아침에 회당에서 바울의 첫번째 설교가 시작됩니다. 바울은 구약시대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권능과 역사하심이 지금까지 어떻게 다윗의 후손에서 그리스도 예수님까지 어떻게 구원이 역사가 성취되었는지 설명합니다. 스테반은 모세에 집중하였다면, 바울은 하나님의 구약시대에 행하신 역사와 다윗에 초점을 맞추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땅에 복음 성취를 위하여 오신것을 전파합니다. 바울은 이전에는 예수를 박해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정반대인 복음 증거인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면서 복음 증거에 앞장서는 삶을 살았습니다. 역사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삶되게 하시고 모든것을 그리스도인으로써 감당하는 삶되게 하시고 항상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 중심이 되는 삶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오늘도 부워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安時: 2018年 2月 20日 (火)

행 13:1-12
안디옥의 교인들이 예배와 금식을 하는 중 성령님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부르신 일을 위해 구별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를 하고 보냈다. 실루기아와 구브로를 통해 살라미에 도착해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이때 요한이 그들을 도왔다. 바보라는 곳에 도착했을때 서기오 바울이라는 지방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려고 했으나 그와 같이 있던 마술사, 또는 거짓 선지자 바예수 자가 그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반대하여 총독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다. 성령에 충만했던 바울은 그를 똑바로 보고 다음을 말한다: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즉시 그는 앞으로 보지 못하게 되어 자신의 손을 잡고 인도할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총독은 예수를 영접해 믿기 시작했고 이 기적을 보고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놀라워했다.

초기 교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힘을 쓰고 그런 중에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역사하셨다. 교회란 단어는 헤라어 ecclesia 에서 오는 말이다, 즉 세상에서 구별되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을 뜻한다. 건물이 아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은 만인의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라 (이사야 56:7) 말씀을 하셨고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마치 구약의 말씀을 알고 따라하는 듯 모일 때마다 같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교회가면 같이 모여 예배하는 중에 잠깐 기도하는 것 빼고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특별 기도회가 아닌 이상 별로 기도를 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 행정모임이나, 같이 먹는 친교모임, 아니면 어떤 강사를 듣는 집회 모임, 또는 교육을 위한 성경공부모임… 다 필요한 모임이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뜻하신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되리라” 하는 모임의 제일 중요한 목적을 상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교회에 들어오자마자 기도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볼일만 하거나 곧장 만날 사람과 대화를 하며 사람의 뜻을 이루어 가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장소로 보여지지 않을때가 있다. 사람들과 같이 모이면 수다만 떠는 것을 더 좋아해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 모임의 제일 큰 목적은 같이 모여 기도하라고 있는 것이다. 교회서 성가대 모임, 성경공부 모임, 다 좋지만 모여 더 자주 기도를 같이 하고 그냥 성경 말씀을 돌아가 읽으며 선포하는 모임을 만들어야 겠다.

바나바와 바울이 간 바보(Paphos)라는 곳에 사탄이 바예수라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이름은 뜻은 ‘예수의 아들’, 로마(헬라)식 이름은 엘루마(Elymas)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 시대 유대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다. 당 시대 발음은 예슈와 구약의 여호수아(예호슈아; 뜻: 구원의 하나님)란 이름과 같은 뜻을 가진 이름이다 (Yeho-shua = Ye-shua). 아이러니하게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에서 사람을 멀리할려고 하는 일을 볼 수 가 있다. 그는 직업은 마술사라고 소개된다. 옛 개역한글판에는 박수. 즉 고대시대에 흔히 점쟁이 (거짓 선지자)역활을 하면서 치유를 한답시고 무슨 주문을 외우거나 사람에게 약같은 것을 만들어 주는 사람을 말했다. 여기서 총독 옆에 있는 것을 보면 총독을 통해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적을 통해 그를 장님으로 만들고 총독은 복음을 통해 구원의 길에 들어선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설교 들을 종합해 분석해 보면 돈과 물질에 대한 설교가 제일 많으시다. 근본적인 메시지는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란 메시지이시다. 창세기서 하나님은 물질을 다스리라고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죄로 인해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됨으로서 창조의 질서가 깨진 것을 볼 수가 있다. 교회에서 제일 많이 듣는 것이 자신들의 돈벌이 생활로 바뻐서라는 말이다. 노예가 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노예. 예수님의 그 많은 말씀은 자신들의 삶과 무관한 것 처럼 그것이 당연히 사람살이의 이치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하기까지하다. 마법사 엘루마가 당당했던 것 처럼. 헌금에 대해서 아나니아 부부처럼 그 자리에서 죽거나 엘루마처럼 장님이 되는 일이 많이 없는 것을 보면 그 당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특별히 더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 같다. 그러나, 죽이시고 장님이 되게 하지 않는다고 거만히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경고를 받고 회계해야 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든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 우리의 마음과 삶이 주의 눈 앞에 펼쳐저 있습니다. 주의 이름에 합당치 않은 것은 회계하게 하시고 삶으로 주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安時: 2018年 2月 19日 (月)

행 12장
헤롯 왕이 예수를 따르던 제자 야고보(마가의 형제)를 죽이고 여러 교인들을 잡아들였다. 유대인들 이를 원했던 것이고 헤롯 왕은 베도로 또한 잡아 들였다.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보초서있던 군인들도 모르게 감옥에서 걸어나오게 하시고 베드로는 마가의 집에서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던 교인들에게 나타가 그 들을 놀라게 한다. 베드로는 일으난 일들을 야고보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이며,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와 다른 교인들에게 말하라고 지시하고 다른 곳으로 간다. 헤롯왕에게 베드로가 없었졌다는 소식이 들리자 헤롯왕은 보초서던 군인들을 사형하고 사람들을 시켜서 베드로를 찾아나셨지만 찾지 못했다. 헤롯왕은 유대에서 가이사랴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다가 사람들이 그가 신이라고 경배를 하자 그는 이를 그냥 받아드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신다. 복음의 말씀은 계속 전파되고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돌아온다.

당시 로마의 법에 의하면 밤사이에 4병의 군인이 한 조를 이루어 세개의 조가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며 만약 죄인이 탈옥하게 되면 감옥에 있는 죄인의 죄를 보초서던 군인들이 고스란히 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이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는지 알면 더욱 놀라운 것이다. 옥에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이는 무슨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기도가 배경에 깔려 있다. 하나님의 더 크신 뜻도 있지만 그에 합당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교인들은 계속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교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계속해서 같이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를 보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 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숫자는 계속 늘어가고 사역자들을 통해 말씀이 선포되고 교인들은 이를 위해 물자적 지원과 기도를 아끼지 아니하였다.

여기서 헤롯왕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나와있다. 요세프스란 당시대의 유대인 역사 기록가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옛역사, 제19권) 헤롯왕은 은으로 만든 매우 반짝거리며 요란 스런 옷을 입은 것으로 기록 되있고 공공 장소에 나와 사람들에게 무슨 연설을 할때 시간이 맞았는지 아니면 비슷한 시각에 구름이 열려 햇빛줄기가 그 에게 비췄는지해서 빛이 매우 크게 그의 옷에 반사되는 작용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를 신이라고 말하며 그를 경배하기 시작했다. 전 장에서 보면 베드로는 치유의 기적을 행하며 안수기도를 통해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신이라고 경배할려할때 베드로는 깜짝 놀라며 자신은 그냥 사람이라고 말하고 경배받는 것을 거부하는 반면 헤롯은 아무말하지 않고 그냥 받아드린다. 마음의 상태를 알수가 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헤롯은 어떤 새를 보고 나서 순간 갑자기 배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쓰러져 5일 동안 앓다가 죽었다고 기록되있다. 성경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struck down” 했다고 말씀하신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하나님께서 겸허하며 순종하는 자는 올리시고 교만한 자는 낮게 하신다. 주님, 오늘또한 가까이서 멀리서 주의 나라위해 최전방에서 피땀흘리고 있는 사역자들과 함께 하여 주소서. 노 선교사님이 계신 볼리비아에서는 전도가 불법화 되는 등 기독교인들의 핍박이 심각한 경지까지가 있습니다. 그들의 사역에 함께 하여 주시사 이런 핍박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사역을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평양 PUST에 있는 마 누님또한 함께 하셔서 지혜와 성령충만으로 지하교회의 더 많은 학생들이 주님을 목숨걸고 따르게 하여주시사 북한이 하루 빨리 복음화 될 수 있게 하여주소서. 캄보디아의 오 선교사님의 사역에도 더 많은 열매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여주소서. 지금 파키스탄의 현지인 사역자들을 가르치고 계신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도 건강을 지켜주시고 주위의 사탄이 세력들이 침범치 못하게 지켜주소서. 이 날에도 주의 역사를 기대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安時: 2018年 2月 17日 (土)

행 11:19-30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하면서 시작된 핍박으로 인해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유대땅에서 먼 곳 까지 흩어지게 되었고 헬라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안디옥 (지금의 터키 중부 극남쪽에 위치안 도시) 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지자 그들은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낸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보고 그들에게 믿음안에서 굳건하라고 격려했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주님에게 오게되었다. 그 후 바나바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안디옥으로 대리고 온다. 일년동안 바나바와 사울은 교회에서 사역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안디옥에 있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불렸었다. (이때 아가보란 선지자가 다가오는 가뭄을 예언한다.) 이들은 유대 땅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선물도 보내었다.

Crisis is an opportunity in disguise 란 말은 사실 위기(危機)란 한자를 풀이한 말이다. 핍박으로 인해 복음이 더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방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독한 유대 우월주의를 무슨 국민적 설득을 통해서 아니면 촛불집회를 형성해서 인식을 바꾸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제일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셨다. 바로 가만히 있지 못할 핍박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어디있는가? 자신의 민족적 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기독교인들을 저 세상 끝까지 내보내시는 과정이다. 여기서 바나바란 사람이 나온다. 기독교인 일꾼의 제일 좋은 본이 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명령하는 위치가 아니라 직접 가서 사울을 대리고 온다. 거의 죽을 뻔하게 되서 멀리 다소까지 보내졌던 사울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사울은 여기서 잊혀졌을수도 있다 그러나 바나바의 순종 (성경에서는 자세히 어떤 경과를 지나 바나바가 가게 되었다고 자세히는 나오지는 않는다) 으로 인해 사울이 나중에는 이름이 바뀌어 바울이 하나님에게 크나 큰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바나바없이는 바울이 없다. 이 두 사람들은 이방인들의 교회인 안디옥교회에서 일년이나 그 들을 가르치고 제일 처음 언급되는 기독교인이라 부림을 받는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게 된다.

우리의 삶속에 위기가 닥쳐올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믿음의 눈으로 보게하시고 불안과 어려움속에 초조해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믿음으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가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바나바 처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직접 순종하여 주의 나라 이루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安時: 2018年 2月 16日 (金)

행 11:1-18
유대땅의 유대 기독교인들이 이방인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유대 기독교인들은 베드로를 비난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상종하거나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가이사라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말하며 이방인도 성령님, 즉 하나님의 영을 선물로 받는데 내가 누구라고 하나님의 일을 막겠는냐 하며 설명하니 그때야 다른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이제 이방인도 회계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인정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선민사상(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란 정신)이 그 때나 지금이나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아담과의 언약 (창 3:15) 에서도 아브라함과의 언약 (창 12)에서도 암시된 모든 인류의 구원에 대한 뚜렸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 사이에서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당연한 것을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듣고 나서야 인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 마져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칭 잘 안다고 했던 바르세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무지하다고 말한 것이다. 진리란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의 단순함을 지루해한다. 그래서 이생의 자랑, 육신과 안목의 정욕으로 인해 더 흥미스럽고 자신의 물욕을 채우는 것을 추구한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없는 높은 벽같은 것을 자신들이 만들어 뽐내고 다니는 것을 즐거워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고 그 들의 누룩같은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 즉 말씀 만을 가지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지않았다. 사소한 율법의 조항들을 가지고 따지며 자신들의 머리좋은 것을 밝히고 남들이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즐기던 자기 도취증에 빠졌던 사람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말고도 더 자신들의 삶을 재미있게 하는 것을 우상삼아 사는 사람들이 만연하다. 그래서, 마음이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진리 앞에서 하품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만 찾아간다. 진리는 삶의 뒷자리도 아니고 등에 칼을 맞고 피흘리며 트렁크에 들어가 있어 온전히 외면당하는 시대이다. 저 유대 기독교인들처럼 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의 물욕에 따라 살아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순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선물로 주신 시간과 물질들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께서 하시는 일과 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바로 보고 느끼게 하시고 그 일에 동참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安時: 2018年 2月 15日 (木)

행 10:34-48
베드로의 복음 선포:
“난 이제 하나님께서 편애하시며 사람을 외모(민족,사회위치,등)로 보시지 않으시고 그를 경외하고 바른 것을 행하는 자를 받아주신다. 너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포된 만유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평강의 복음을 아노라. 요한이 세례를 하고 나서 갈릴리에서 시작해 온 유대 땅에서 일어난 일을 아노라.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시고 함께하사 악한 영의 영향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등 선한 일을 행하였다. 유대인은 그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하신 나와 다른 증인들은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음식까지 먹었노라. 우리에게 명하사 예수가 살아 있는자와 죽은 모든 자의 재판장으로 정한바 된 것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라하셨고 모든 선지자들 또한 그를 증언하되 그를 믿는 자마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베드로는 그들의 요청대로 몇 일 더 머물게 된다.

복음이란 예수님의 정체와 사역에 대한 선포를 말한다. 예수가 빠지면 복음이란 없다. 절대적으로 설교마다 예수님의 이름이 언급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 설교마다 예수님의 복음이 빠지면 과연 그 설교는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강단인지 아니면 사람의 의견만을 담은 강단인지 의심해볼 여지가 있는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는 다는 것은 유대 종교적 관점에서는 매우 큰 것을 말하고 있다. 율법의 1/3 이 죄 사함과 관련있는 것들인데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율법에서 요구되는 죄사함과 관련있는 것들, 즉, 성전, 제사장, 희생물, 그리고 희생에 요구되는 조항 들이 다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이 들은 성전이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매우 큰 상징물이다. 성전이 더 이상 중심이 되지 않으며 율법의 중요한 조항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복음이다. 복음은 사실상 여러면에서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하나님의 영의 충만한 역사또한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복음을 들었을때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들의 삶 전체가 180도 바뀌었었다. 그렇다, 복음을 통해 예수가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바로 깨닫게 되면 우리가 진정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을 알게되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얼마나 큰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 하셨는지 알게 된다. 이 근본적인 현실에 눈을 뜬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예수 귀한 그 이름앞에 찬양할 수 밖에 없다. 은혜의 하나님의 역사앞에 탕자처럼 돌아와 그 품에 안길 수 밖에 없다. 나를 힘들게만 하고 너무나도 멀리만 있던 하나님이 너무나 가슴벅차게 크신 사랑을 배푸는 아버지로 알게 되는 순간이다. 할렐루야!

安時: 2018年 2月 14日 (水)

행 10:17-33
베드로가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과 같이 가이사라로 가서 백부장 고낼료를 만난다. 베드로는 들어가 원래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 어떤 사람들도 깨끗하지 못하다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을 밝히고 (하나님께서 몇일 전에 보여주신 것) 고넬료는 자신이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대리고 오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선포하라는 말씀을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율법상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히 선택받은 백성이다. 거룩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예로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되는 물건들은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상이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위한 것이면 흔한 것과 분리된다.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해당될때는 거룩이란 표현이 사용된다. 유대인 백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기 위해 선택된 백성. 그들이 무슨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구약의 말씀을 보면 하찮고 마치 버려진 아이와 같은 백성을 선택하여 쓰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던 것. 유대인들은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의 오류를 보고 율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매우 큰 노력을 했는데 이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구약의 613의 율법에 더 엄격한 기준을 마치 집에 둘러있는 높은 담 처럼 만들어 수천가지에 이르는 법률을 만들어 지키고 있었다. 그런 인간들이 만든 조항들에 더 권위를 주기위해 제목을 Mishnah (구전율법) 이라고 하여 모세 오경이외에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 지켜져온 것 처럼 포장을 하였고 이것은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한 전통 유대인들이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법전이다. 이렇게 엄격한 유대인들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에 확신을 가지고 이방인들을 따라간다. 인간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He was teachable.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로 부르셨는지도 모른다. 제사장이나 바르세인이나 사두게인은 인간의 mishnah 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 생각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약의 말씀에 어긋나지않고 도리어 완성시키시는 복음의 말씀을 받아 드릴 수 있는 마음상태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They weren’t teachable. 자신의 편견, 버릇, 편향, 성격등에 어긋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는 배울 수 있는 마음인가 아니면 인간의 것만을 고집하는 사람인가? 주님, 주의 말씀 앞에 그 어떤 것도 더 높이 올라가게 하지 마시고 저 또한 teachable 한 마음으로 가질 수 있게 인도하셔서 주의 고귀한 말씀의 빛으로 오늘 이 날의 길도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安時: 2018年 2月 13日 (火)

행 10:1-16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이 있었는데 그 는 불의 이웃을 돕고 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환상 중에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그의 착한 행실과 기도가 하나님앞에 전달되어 기억되었다고 하며 욥바에 머므르고 있는 베드로를 대리고 오라고 명령한다. 다음 날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깨끗하지 않은 동물(돼지, 파충류, 새, 기타등등)까지 먹으라고 하신다.

 

백부장은 유대인은 아니지만 10장 후에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자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를 봐서는 그는 그 시대 때 만연한 헬라또는 로마제국의 다신주의보다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받아드리고 그 에게 기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구제에 힘썼다는 것이 나온다. 이 또한 그냥 말로써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서도 하나님의 믿음을 알 수 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백부장에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힘이 아닌 온전한 은혜의 방식으로 그를 구원하시고자 하기 위해 베드로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음 날 베드로를 준비시키신다.  베드로는 유대인이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도 신앙을 실천하는 유대인들은 음식을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을 두어 먹는다. 금지된 음식들이 많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환상을 통해 하늘에서 먹으면 안되는 금지된 동물들을 내려 보내시고 먹으라고 지시하신다. 이 뜻의 풀이는 곧 일어나는 상황을 통해 해 주신다. 구약의 율법은 모세오경에 수록되어 있으며 크게 3가지로 나눈다. 도덕법 (moral law), 시민법 (civil law), 그리고 의식법이다 (ceremonial law).  도덕법은 십계명에서 요약되고 있고, 시민법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해당되는 법, 그리고 의식법은 제사와 제사장 그리고 죄씻음과 관련된 율법에 해당된다. 레위기11장에서 깨끗지 못한 동물들에 대한 법이 나오는데 이것이 의식법에 해당된다.  도덕법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계속되는 법. 시민법은 도덕법과 합쳐 현대 존제하는 인간의 모든 법의 기초와 원칙을 제공해주는 법의 원천지가 되지만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으로 인해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때 지성소의 성막이 찢어지므로 더 이상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것을 믿고 직접 하나님께 나갈 수 있으며 우리가 음식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인해 죄사함을 받고 온전히 예수가 이루신 공로를 통해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 칭함을 받는 것이다. 이를 기억하라고 예수님께서 성찬식으로 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여기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루신것들을 온전히 다 이해하고 있지 않지만 계속되는 사역과 여러 사도들을 통해 이것이 초기교회에서 거의 모두 다 드러나고 기독교에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이해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본문을 이해하는데 필요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은 이렇다. 백부장의 믿음이 하나님께 전달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는 그냥 종교적 행위만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엄청난 은혜를 배푸셨다. 그렇다 구약에서 부터 신약까지 모든 말씀들은 우리가 그냥 듣고 이해하고 끝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 실천되고 행하라고 있는 것들이다.  그 시대 유대인들은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것이고 지금 이날까지 그 전통이 살아있어 유대민족은 교육에 매우 열정이 크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삶에 적용하고 살아가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  주님, 순종은 없고 머리만커져가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를 알아도 그것을 평생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주님의 종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安時: 2018年 2月 12日 (月)

행 9 (지난 2일 + 오늘 분량)

사울은 사도들을 잡아 죽일 각오로 대제사장의 권위를 받아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하늘에서 큰 빛이 내려와 사울은 땅에 떨어지고 “사울아, 사울아,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 란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예수이며 도시로 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받는다. 사울과 동행했던 사람들도 소리를 들었으나 아무도 없었기에 다들 기이히 여기고 사울은 장님처럼 보지를 못해서 그들이 다메섹에 까지 인도해 주었다. 다메섹에서는 제자 아나니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울의 눈을 다시 뜨게 하실려고 하나 아나니아는 사울이 어떤 사람이고 왜 마메섹에 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두려움을 표했으나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으로 택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아나니아는 순종하여 사울을 만나 기도해 주고 사울은 눈을 뜨고 세례를 받는다. // 사울은 다메섹에서 몇일동안 제자들과 시간을 보낸 후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사울의 변화에 놀라며 시간이 지나며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일려고 계획하나 사울과 제자들은 이것을 미리알고 피해다닌다. 사울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할려고 했으나 제자들은 그를 아직 두려워하였으나 바나바란 제자가 그를 사도들에게 대려와 있었던 일을 설명하니 사울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헬라말하는 유대인들은 그와 토론하고 죽일려고 하자 제자들이 사울을 살리기 위해 멀리 보낸다.  이 동안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이 된다. // 베드로 룻다에 가서 8년동안 중풍병으로 누워만 있던 애니아란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하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른다. 근처 마을에 있는 착한 일을 많이하는 다비다라는 그리스도인이 병으로 죽자 사람들이 베드로를 오라한다. 베드로는 와서 기도하자 죽은 다비다가 다시 일어나자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다.

 

유명한 사울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기를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없앨각오를 하며 다메섹으로 가지만 예수님은 사울이 상상하지도 않았던 계획이 있으셨고 사울은 그 때 주변 나라들을 다 복음화 시키는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의 도구로 사용이 된다. 하나님의 뜻이란 사람의 좁은 견해나 생각에 따른 것 과는 차원이 다른 계획이고 차원이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인간적인 논리로 왜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시고 등등 생각할 수 있지만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다 버리는 것 없이 하나님의 좋으신 뜻대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선택하시고 사용하신다. 바울은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달달 외우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예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눈을 뜨게 하시고 많은 교회에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 교회의 기반을 세우시게 하신 것이다. 바울과 같이 사용이 되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여러 다른 방법으로 그 시대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에 합당하게 사람들을 쓰신다. 요한, 베드로, 마태, 여러 사도들 다 각각 주어진 텔렌트대로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다. 베드로가 무슨 큰 능력이 있어서 아니면 누군가가 어떤 큰 지혜와 능력이 있어서 쓰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으로 봐서는 하찮은 것 (대부분의 사도들은 무식한 어부들이었다) 낮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올려 쓰신다. 주위에 가까이 보이는 것들을 봐서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부터 쭉 아무런 큰 변화없이 자란 신앙인의 모습은 자신이 뭘 잘했는지 잘하는지 자랑하고 있는데 도리어 전에 하나님의 모르고 방탄했던 사람은 지금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은혜로 자신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셨는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이를 보면서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면서 살고 있는지… 주님, 오늘 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인도하여 주시고 말씀의 빛으로 나의 앞길을 밝혀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