がまん (我慢) 日本人의 忍耐

한국사람으로 태어나 일본이란 상당한 존재성을 의미한다. 증오의 대상이되기도 하면서 조용히 존경하게 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이되기도 한다. 1970년대 태어난 나에게는 만화를 통해 그리고 미국에 와서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를 공부하면서 그 후에는 일부러 더 노력하지 않아도 한국인들은 일본을 뉴스를 통해 그리고 여러 다방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알버커키에 와서 검도를 시작해 이제 8년되었다. 일본식 검도이지만 정작 가르치는 사범은 여기 본토배기 나바호 인디언의 자손이다. 그가 과거에 일본을 접하게 되었고 그리고 40여년 동안 검도를 배우며 여기서도 검도르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70세를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다. 그러나, 검도를 하면서 가끔식 검도세미나나 대회또는 심사를 통해 다른 제미일본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가끔식은 깊은 대화를 나누며 한국사람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배운다. 캘리포니아에서 타오스에 오셔서 방문해 가르치셨던 시카이 선생과 몇몇 검사들과 같이 저녁을 하며 많은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거기서 나왔던 주제를 가지고 시작해 볼까 한다.

がまん

한문은 한국어로 아만이라고 읽는다. 일본문화의 하나의 토대가 되는 선불교에서 나온 단어다. 원뜻은 사실 그렇게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을 높여 남을 낮게 본다라는 뜻. 한층 더 깊이들어가면 자신을 높이여기는 어떤 자존심에 의존해 그 어떤 것도 견딘다는 뜻에 가깝지 않을 까 한다. 아무튼, 원래 현시대의 사용은 일본 섬나라에서 시작한 단어가 아니고 미국에서 사는 일본인들로 인해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2차대전 중 강제로 억류된 일본계 미국인들이 쓰기 시작한 단어. 그리고 다시 단어를 널리 기억나게 한 것이 바로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사건이다. 바로 인간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 같은 상황을 견디어 내는 인내를 뜻하는 것이 바로 이 단어인것이다.

그러나, 단어가 최근의 유래가 되었다 해서 일본인들에게 새로 생긴 인내가 아니다. 그들의 문화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던 것을 그냥 불교에서 단어를 빌려 쓰는 격이다. 그들의 문화는 사실 오랜 과거의 향기를 품기며 현시대의 꿈꾸는 문화이다. 한국이란 나라는 외부의 침략과 전쟁으로 인해 매우 빨리 현대화되었고 역사의 휘오리바람속에서 과거와의 맥이 끝어진 느낌이 강한 문화로 변해있다. 그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역사공부운동이 퍼지고 다시 정리를 하고 있는 단계에 와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맥이 끊어졌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천황의 명령으로 인해 현대화가 되었고 그 천황의 엄청난 역사적 유산은 지금 상징적으로 그 후손으로 살아 숨쉬며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힘든 것들을 불평없이 조용히 견디어 내는 것을 뜻한다. 2011년에도 그들이 소리내어 펑펑 울지 않았던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는 것에 온 세상사람들이 혀를 차며 칭찬해 했던 것이 아닌가. 그들은 과거의 가치관을 뼈속 깊이 새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다. 시카이 사범도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매우 힘들었을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까지도 힘든 속마음을 보이지 않으며 아내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걸었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서 열매를 맛보는 인생의 진정한 보람을 느끼는 가정사를 엿들으며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을 펑펑 터뜨리고 문을 쾅 닺고 상을 엎어버리고 쓰고 던져지는 휴지처럼 신앙을 버리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쉽게 화을 토해내버리는 한국인들. 그에 비해 많은 일본인들은 여자나 남자나 할 것없이 마치 무슨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군대에 입대한 사람들 처럼 이런 인내하는 면에서 일관성을 보이는 것을 보면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이런 사람들을 알면서 주위에 보이는 한국인들을 보면 챙피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십자가에 피를 흘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불교적인 고난의 행군을 걷는 삶을 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어둡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난속에 기쁨을 발사할 수 있지 않는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인내 쯤이야 식운 죽 먹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가 고난속에서 웃으며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